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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Apr 10. 2018

여행자여

춤추고 노래하라

어느날 문득 제주와 사랑에 빠졌던 나는 홀로 여행을 왔던 2001년초 부터 10년이 훌쩍 넘도록 매주 주말, 혹은 평일 당일치기도 불사하며 비행기를 탔다. 회사 이동으로 잠시 쉬는동안이나 여름휴가, 주말에도 늘 제주에 머물렀으니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주를 오가던중 자주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일을 제안 받았다. 자신이 길게 여행을 가는데 자신이 없는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돌보아줄 사람을 찾는다는것이었다. 안그래도 지난 여행 후유증으로 제주에 갈 생각만 가득헀던 내게는 너무 꿀 같은 제안이라 혹시 가능하겠냐고 묻는 그녀에게 고민도 않고 그러겠노라며 긍정의 대답을 했다.

 

제주에만 오면 걷는 여행을 하는 터라 오래도록 탈 것을 타지 않은탓이었다. 그 상태로 육지에 돌아가니 전철만 타도 멀미가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버스가 지나가며 내뿜는 매연에 멀미를 했다. 도로가의 자동차 경적소리가 그렇게 큰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귀에 통증이 느껴졌다. 결국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다 꿀같은 그녀의 제안에 고민도 없이 보름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두가 깜짝 놀란 업계 사건중의 대사건이었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여행 다녀온 이후로 갑자기 사표를 던졌으니 사람들은 내가 어디 대단한 나라로 유학이라도 가는줄로 알았다고 했다.


그럴리가. 나는 제주도에 갑니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계리 해변까지 산책 겸 운동을 다녔다. 단산을 옆에 두고 걸으면 안개 자욱한 마늘밭이 나타나고 그 길로 쭉 걸어나가면 사계 해변이 나오는데 형제섬은 밤새 안녕한가 살피며 다정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인근의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는것, 그것이 나의 오전 일과. 안개 자욱한 습한 바람탓에 머리카락과 옷은 매일 흠뻑 젖었지만 그것만큼 행복한것이 없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퇴실하는 손님을 배웅하는 일상. 아, 이토록 꿈같은 하루라니.

사계 해변으로 가는 길

가끔은 오래 머물러 가까워진 손님들을 데리고 인근의 초등학교로 달빛산책을 가기도 했다. 오래된 우물가에 손님들을 두고 오며 귀신소리를 내어 장난을 치기도 하고 무덤가에서는 소울음 소리를 냈다. 조금 더 한적한 마을길에 들어서면 길 한가운데 등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종종 우리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서면 그 날의 주인공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스텝 삼총사


이렇게 나는 주인없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같은 임시주인이 되었고 내 집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정성껏 보살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흔히 있을법한 사건 사고도 많이 겪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절은 그때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녀 대신 게스트 하우스를 돌보게 된것이 내가 제주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인 아닌 주인이 되면서 상상만 하던 제주의 삶이 처음으로 가까이 다가왔고 제주 정착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스텝 일만 해도 내겐 환상에 가까운 여행같은 일상이었고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는 그야말로 "현실"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성급하고 오만한 판단이었다. 

그렇다. 이상과 현실, 여행자와 생활자의 괴리를 몰랐던 지난날의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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