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리는 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e Feb 10. 2018

자괴감

빛 보다 빚 많은 삶을 살죠


종종 포기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루를 사는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기분이 들어 매일 지옥같은 자괴감에 빠졌다.



지난 봄부터 받아놓은 날짜에 쫓겨 달력만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이 섬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가진것이 없으니 쉬는날마다 여러 은행을 돌며 빌어야 했다. 온풍기의 따뜻한 바람으로 가득한 은행은 순식간에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지만 대출업무 담당자의 근처로 갈수록 다시 발가락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가시방석에 앉은것처럼 불편한 의자에 엉덩이를 제대로 붙이지도 못한채 걸터 앉아 어정쩡한 자세로 귀를 기울였다. 간청하는 두 얼굴을 번갈아보던 그는 우리를 고작 신분증, 소득금액증명원 따위로 판단하고 계산했다.


"자영업이시네요. 장사는 좀 되세요?"
"아, 서류 보시다시피 잘 못 벌고 있습니다. 하하"


우리의 자조 섞인 쓸쓸한 답이 민망했는지 대출 담당자는 서류에 코를 박고 그저 볼펜만 돌린다. 몸값이야 진작에 헐값이라 기대한 바도 없었지만 홀딱 벗겨진 기분으로 대출 담당자 앞에 앉은 우리는 소득에 관한 그의 몇마디 질문 만으로도 가진 기력을 모두 소진했다. 은행의 엄중한 잣대에 의하면 우리의 일년 매출은 대출이 가능한 금액에 미치지 못하여 대출 가능성도 적고 되더라도 금액 자체가 몹시 적거니와 추후 상환 능력까지 의심 받을 만한것이라고 했다. 잔뜩 붉어진 볼을 차가운 손등으로 식혀보았지만 부끄러움과 모멸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 또래밖에 되지 않았을 젊은 얼굴에 허리숙여 연거푸 인사를 하며 잘 부탁드리겠노라고 간청하며 돌아 나오는 길에 붕어빵을 팔고 있는 트럭에서 먹기좋게 불은 오뎅을 정신없이 삼켰다. 뜨거운 오뎅국물이 입천장을 다 녹여내는것도 모른채.

우리는 40대에 원점, 혹은 마이너스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의 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