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감없이 보여주는 참혹함의 현장, 전쟁
'저니스 엔드'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원제 Journey's end를 듣고서야 여행의 끝이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었고, 사실 포스터를 보기 직전까지 이 영화가 전쟁영화 일 것이다라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행의 끝이라는 제목이 <덩케르크>처럼 힘든 참상에서 어떻게 전쟁을 잘 이겨냈는가에 대한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하였다. 그러나 내 예상은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와장창 부서졌다. 이 여정의 끝은 그만큼 추측 밖이었고, 그렇기에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는 그런 전쟁영화다. 전쟁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 그런 영화였다.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나는 당연히 이 제목에 대하여 긍정적인 짐작을 했었다. 끔찍했지만 결국 전쟁은 끝났고 주인공들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리라고.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영화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아닐 거야로 바뀌다가 끝끝내 '아니'가 되어버린다. 이 여정의 끝은 생각 이상으로 끔찍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그중에서도 어마어마한 수가 죽은 최전방 점호에서의 전투가 그려졌고, 결국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가 봐온 모두가 죽었으며, 그 몇 배가 더 죽어서야 이 전쟁이 끝났다였으니.
생각 밖의 결말에 충격은 당연했다. 실은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결말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뎅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는 승전과 패전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라, 누군가 승전하면 또 누군가는 패전하고, 아무리 승전이라 하더라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전쟁의 기본값인데도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들이 살아남을 것이라 자신했던 것 같다. 결국 모두가 죽는다는 끝이 분명히 현실에는 널리고 널렸을 테고, 영화의 마지막에 올라온, 이 전투에서 죽은 자를 기록한 어마어마한 숫자가 이를 증명함에도 말이다.
그래서 뭔가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하는 전쟁들은 승전이 훨씬 많이 그려져서 나름의 해피엔딩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아. 실상은 참혹 그 자체였겠다라는 점이 한순간 실감되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직후는 멍했지만, 곱씹으며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모두 현실이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 현실의 참혹함을 잊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꽤나 역할을 다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이 말이 떠오른 이유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이 참혹함 속에서 결국 전쟁의 끝은 어마어마한 수의 희생에 불과했다. 전쟁이 이어질수록 그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했을 뿐,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저 말이 떠오른 것 같다. 우리가 본건 한 번의 전투, 그리고 거기서 희생된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론 이 몇 배에 다다르는 전투가 있었고, 그 희생자의 수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엔 전쟁이 무의미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시작에야 여러 가지 이유가, 그리고 명분이 존재하였겠지만, 결국 그 끝이 희생자 수 늘리기라면, 너무 무의미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영화의 엔딩이 마냥 참담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 허울 좋은 전투 끝에 죽어나간 그 사람들이, 그 숫자가 너무 아파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면 이 무의미한 희생이 반복될 뿐이니까. 그래서 저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렇게 전투가 반복될수록 결국 피해 입는 건 인간이고, 정말 전쟁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 전쟁이 인류를 끝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참혹함을 버티던 사람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가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을 중심으로, 각 인물들의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견뎌내는 심리를 세심하게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특히 전쟁의 지친 스탠호프 대위의 모습과 갓 들어온 신참 소위인 '롤리 소위(에이사 버터필드)'의 심리가 대비되어 그려지면서 전쟁의 참혹함, 무자비함이 더욱 도드라진 것 같다. 여기에 중간적 위치에서 두 사람을 조율해주던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 또한 너무 대단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특히나 신기했던 점은 이렇게 중점적으로 다뤄진 사람들이 다 중간 관리자의 위치였다는 점이다. 다른 전쟁영화에서는 장교들보다 일반 병사들을 더 많이 본 것 같은데, 장교들의 위치에서 영화가 그려지면서 상사에게 시달리고 아랫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영화를 더 중압감 있게 느껴지게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동안 영화에서 그려진 수많은 전쟁의 해피엔딩에 익숙해진 나 자신에게 진짜 전쟁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라는 점을 인식시켜준 느낌이랄까. 특히나 전투를 겪는 인물들의 심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그려내면서 이러한 묘한 긴장감과 전쟁의 참혹함이 더 부각된다. 여기서 메인이 되는 인물들이 장교급이라는 점은 독특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전쟁의 공포에 대해 잘 보여주는, 그 안에서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나의 별점 : 3.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