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애매한, 그래서 더 이해되던 '영주'
'나의 부모님을 죽인 가해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이 영화의 소재를 처음 봤을 때에는 당황 그 자체였다. 문장으로 봤을 때에는 머리로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부모를 죽인 사람에게 정을 느낄 수 있지? 이게 처음 영화 <영주>를 알게 된 후 나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말로는 표현 못할 애매함과 미묘함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애매한데 애매해서 괜찮은 그런 영화였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
어른도 아닌, 그렇게 아이도 아닌 열아홉
열아홉. 나는 이때가 가장 애매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 그 끝에 있는 나이, 그래서 어른의 모습도 아이의 모습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한쪽으로 온전히 여겨지지 않는, 애매한 모습의 나이라고 말이다. <영주>의 주인공 '영주(김향기)'는 딱 이 애매한 나이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또래의 19살보다는 더 어른 쪽에 기울어졌다고 보는 게 낫겠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현실은 '영주'를 어른에 더 가깝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를 '어른'이라고 완전히 단정 짓지 못하는 것은 애써 꾸미는 어른스러운 모습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그 나이 특유의 아이다운 모습들 때문일 것이다. 어른일 수밖에 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영주의 삶에서 '상문(유재명)'부부를 만나면서 아이가 되고 싶은 순간들이 자꾸만 끼어들다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 영주의 모습은 안쓰럽다가도 이해도 되면서 가슴에 남는다.
애매한 나이에서 아이의 방향은 어른을 향할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더딜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영주'의 상황은 야속하게 재촉만 할 뿐이다. 지금은 '어른 아이'라고 불리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게 참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아직 아이에 가까운 지금, 열아홉에도 이미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 '영주'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또 혹독한 '어른'으로서의 삶이기 때문에. '상문' 부부라는 마지막 위로까지 없어져버린 영주에게 정말 남은 거라곤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길 뿐이니까. 더 이상 '아이'로서의 영주는 없어질 테니까.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엔 정말 영주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아직 조금이라도 아이일 때, 조금 더 아이일 수 있을 때 나는 영주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도 조금은 아이다울 수 있도록. 그렇게 억지로 성장해야 했던 아이가 조금은 뒤도 돌아보며 천천히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매해서 깔끔한
애매한 나이의 '영주'가 주인공 이어서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전반적으로 느낀 감정은 '애매함'이었다. 영주가 처음 '상문'에게 느꼈던 분노와 '향숙(이호정)'에게 느꼈던 따스함 모두가 공감되어 정말 애매했던 것 같다. 특히 '영주'가 '상문' 부부와 가까워지면서 동생 '영인(탕준상)'과 싸우는 그 순간에는 영주도 영인이도 너무 이해가 되어서 가슴 아팠다. 부모를 죽인 가해자와 가깝게 지내는 영주를 이해할 수 없는 영인도, 그런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상문 부부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영주도 어느 한쪽의 편을 쉽게 들 수 없을 만큼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참 영화가 애매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영화의 이 애매함이 좋았다. 굳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은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영주가 그러면 안되지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주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허울 좋은 명분들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는 애매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꽤 좋았다. 삶에서의 선택은 YES or NO로 딱 정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 애매한 엔딩이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영주가 어느 쪽을 선택하지 못한 채 끝나버린 이 엔딩이 어쩌면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는 '영주' 그 자체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절대 애매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
사실 이 애매모호함을 매력으로 만들어준 것은 누가 뭐래도 '영주'를 맡은 김향기 배우였다. 열아홉이 가지는 그 복잡하고 미묘한, 그리고 상황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감정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연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더불어 '상문'역의 유재명 배우와 '향숙'역의 김호정 배우 역시 인상 깊었다. 사실 영화가 너무 '영주' 포커스 위주이지 않을까 약간 우려했었는데, 그 안에서 여감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싶었달까. 영주가 보여주는 만큼은 아니었다고 해도, 꽤나 복잡한 상황과 미묘한 감정을 잘 전달해준 것 같다. 다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탕준상의 경우는 살짝 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데 거슬릴 만큼은 아니었어서 그냥 괜찮게 볼 수 있었다.
완전히 어른일 수도, 아이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영주'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아이러니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애매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이 애매함이 매력이 된다. 복잡한 감정선을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애매해서 깔끔했던 엔딩 덕분에 꽤 괜찮은 느낌을 받은 영화였다.
나의 별점 : 3.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