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현실 속 하나의 안식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다
엘르 페닝. 유명 아역배우였던 언니 '다코타 페닝'의 동생으로 불리던 배우가 언제부터 그 언니보다 더 눈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부터 <말레피센트>, 최근의 <매혹당한 사람들>까지. 주인공이었던, 그렇지 않던 그녀는 뭔가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배우다. 그래서 그녀가 떡하니 그려진 포스터가 나에게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보게 된 이번 영화 <갤버스턴>은.. 글쎄... 엘르 페닝과 벤 포스터의 연기에 감탄할만한, 하지만 그 이상은 더 얘기하기 애매한..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 스포일러가 많은 글입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
지옥을 살아가던 두 사람의 유일한 안식처
처음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갤버스턴'이 뭘까? 궁금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사람 이름. 근데 인물 소개를 보니 그런 사람은 없더라. 그래서 혹시 저 포스터 속 바닷가 이름인가 싶어 찾아보니 뭐 바다 이름보다는 큰, 그 도시의 이름이었다. 물론 내가 미국의 지리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더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갤버스턴이 그렇게 알려진 도시가 아니라는 점에는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이 낯설고 친하지 않은 도시를 영화는 두 주인공, '록키(엘르 페닝)'와 '로이(벤 포스터)' 하나뿐인 안식처로 그리고 있다.
사실, 갤버스턴은 그렇다 화려하거나 보는 내내 우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도시는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그려진 파라다이스들과 비교하자면 많이 수수하고 아담한 바닷가 동네랄까. 바다를 뺀 주변 환경을 봐도 아주 럭셔리하다거나 깔끔한 것 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독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록키와 로이의 인생에서 이 한적한 해변의 도시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그들의 인생이 너무 다이나믹하기 때문이었을까. 이 조용한 마을은 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
사실 로이는 이 도시가 처음이 아니다. 아주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과의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의 아늑함을 쫓아 자신과 닮은, 그래서 안식이 필요한 소녀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는다. 세상이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이 도시는 변한 것 없는 듯 그 안락함을 지닌 채 지친 두 사람을 품어준다. 로이가 지친 삶을 이어갈 수 있게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줬던 그곳은 이제 록키와 티파니에게도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시작과 연결되던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티파니와 재회한 후 로이가 폭풍우 치는 갤버스턴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 장면이. 뭐랄까.. 폭풍 때문에 모두가 피하고 떠나는 그곳이, 그 화려하지도 감탄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은 도시가 그에게는 단 하나 뿐인 마음의 안식처구나 싶었달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 같은 그 지독한 폭풍을 뚫고서 다시 그곳을 가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곳에서 록키를 만나 그는 다시 안식을 찾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담은 엔딩이기에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아쉬웠던 영화
이 영화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를 뽑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두 주연배우 '벤 포스터'와 '엘르 페닝' 미친 연기를 꼽겠다. 벤 포스터라는 배우를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고독하고 쓸쓸한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한부를 선고받고 난 이후, 충격과 동시에 회의감에 빠진듯한 그의 모습은 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달까. 그러다 록키를 만나고 변해가는 모습들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한 엘르 페닝의 연기야.. 정말 좋았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록키라는 사람 자체가 엘르 페닝이 가진 이미지랑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한없이 순수해서 마냥 어린애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인생의 씁쓸함을 한 바가지는 들이킨 것 같은 그 처량하고 위험한 모습에 자꾸 눈이 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편하다거나 아쉬운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특히 록키라는 캐릭터가 너무 소모품처럼 쓰인 게 아쉬웠다. 분명 포스터에 저렇게 크게 그려놓고! 스토리 진행 상 보자면 로이의 여정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밖에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웠다. 사실 여성 감독이라고 해서 여성 캐릭터에 더 기대했던 게 사실인데.. 이렇게 기대가 무너져버려서 아쉽다.
그 외에도 막판에 로이가 탈출하는 원테이크 신이 탈출 치고는 너무 길고 루즈하게 그려져서 긴장감이 훅 떨어지는 게 좀 그랬다. 보다 보면 '어떻게 빨리 나가야 돼!!'라는 생각이 들어하는데 '저런데도 안 들킨단 말이야?'란 생각만 들어서 스릴러나 추격전류의 재미는 확실히 덜했던 것 같다. 이렇게 루즈한 신 다음에 바로 이야기 전개가 급 이뤄졌던 점도 갑자기 끝내려는 느낌을 줘서 뭐지 싶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읽다 보면 <레옹> 느낌이 나는 영화인데, 록키가 마틸다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확실히 레옹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갤버스턴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위안과 안식을 느끼며 서로 닮은 부분을 교감하는 두 캐릭터의 감정선은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묘한 감정을 잘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하지만 부분 부분 여성 캐릭터의 쓰임이라던가, 탈출신 등이 기대 이하여서 아쉬움이 더러 남는 영화이다.
나의 별점 : 3.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