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하지만 같은 '우리집'을 꿈꾸며
청량한 배경 속 다부지게 손을 맞잡은 세 어린이와 '우리가 집 지킨다'라는 당찬 포부까지. 포스터부터가 눈에 딱 들어온 영화였다. 게다가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이 연출했다고 하니 기대는 배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너무 앙증맞으면서도 마냥 핑크빛만은 아닌, 그래서 더 마음이 간 그런 영화였다.
우리집(Home)과 우리집(House)
'집'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를까?
누군가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양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의 아이들의 머릿속 '우리집'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김나연)'와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는 각자 자신의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서로 생각하는 '집'은 다르다. 하나는 나름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부모님 사이의 불화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면 유미는 가족끼리 사이는 좋지만, 자주 이사를 다니고 지금 살고 있는 집마저 곧 이사해야 하는 상황에 닥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 아이는 '우리 집은 왜 이렇담'이라는 똑같은 걱정을 나누며 마치 진짜 가족처럼 끈끈함을 쌓아간다.
각자의 고민에 한숨이 쌓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싸우기도 한 아이들은 주인 없는 텐트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다. 나란히 누운 셋은 똑같이 생각한다.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어쩌면 누군가에겐 하룻밤의 휴식장소가 이 아이들이 꿈꾸는 '우리집'이 된 이유는 이 조그마한 텐트는 가족 사이의 불화도 없고 나가야 한다는 압박도 없는, 그래서 행복하게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걱정도, 유미, 유진이의 불안도 없는. 그래서 행복만 가득한 항상 꿈꿔오던 '우리집'말이다. 이 이상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다시 까르르거린다. 그렇게 서로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 식구(食口)
"식구".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구성원을 이르는 말이다. 누가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아니랄까봐,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문화에서 자고로 가족은 밥을 같이 먹어야 가족이다!라고 생각해왔다. 영화의 시작부터 하나는 가족에게 같이 아침밥을 먹자고 얘기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하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날, 하나가 여행 도시락을 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하나가 말없이 사라진 자신을 타박하는 가족들에게 밥을 먹자고 계속해서 얘기하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식구라는 그 말 뜻 그대로, 밥을 함께 먹으며 가족의 정을 나누고 싶어 했던 하나의 바람은 가족이 와해되기 직전이라는 그 순간에야 이루어진다. 그 묘하게 어색한 관경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가족들이 서로 마주 보기 시작한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가 그렇게 소원하던 '우리집'을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하나가 꺼냈던 '진짜 가족 여행'도 이번엔 어쩌면 성공적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오랜 꿈처럼 이제는 가족들이 정말 식구처럼 함께 앉아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있으니까.
Home으로서의 집과 House로서의 집이라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우리집'을 소원하던 세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끼리의 불화와 나가라는 압박이 없는 그 조그마한 텐트를 진짜 '우리집'이라고 생각하던 세 아이는 너무 순수하면서도 그 순수함에 마음이 짠했다. 포스터처럼 청량했지만 마냥 핑크빛은 아니었던,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영화였다.
나의 별점 : 3.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