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 중이며 서울 소재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가장 잦은 빈도로 가장 많이 경험하고 있는 제품(?)은 지하철이다. 이전에는 크게 눈여겨보거나 몸소 느끼지 못했으나, 기획자로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다 보니 부분 부분 어 이런 부분 개선됐네? 하고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어 정리하면서 어떻게 서울 지하철이 사용자를 고려하고 있는가를 보고자 한다.
※ 지하철 호선, 전동차의 연식(?) 등에 따라 매번 경험은 달라질 수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린다.
그래서 이번 역이 어디야?
이어폰을 끼고 지하철에 실려서 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 왔지? 하는 순간이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차내 안내판을 바라봤을 때 그동안 내가 봐왔던 화면의 열에 여덟은 이랬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
그러면 이어폰을 빼고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안내음성에 집중하기 위해 귀를 쫑긋하곤 했다. 그런 민원이 많긴 했는지 2023년 7월부터 서울시는 전동차 내부 안내기 화면에 이제 도착하는 역 정보 노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상단에 다른 정보 혹은 광고 영상이 노출되지만 하단에는 도착하는 역의 국문명이 계속 노출되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 언제 안내판을 보더라도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바로 식별이 가능하게 되었다.
추가로 최근에는 역명과 함께 역의 고유 번호를 안내하고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용자는 한국어 정보만으로 역을 쉽게 식별할 수 있지만 영어, 심지어 외국어표기법으로 적힌 역을 외국인 사용자들이 식별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 중 외국인으로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에 역의 고유번호가 제법 도움이 되었던 터라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는 외국인 사용자들께도 해당 기능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빠르게 환승하는 법
지하철을 타다 보면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것이 환승일 것이다. 출퇴근길 등 자주 가는 경로에서야 어느 승강장 번호(ex. 1-4)가 가장 빠르게 환승할 수 있는 경로인지 외울 수 있겠지만, 자주 가지 않는 경로에서는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 등 관련 내용을 안내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환승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승강장 번호가 출구로 가는 계단과 바로 닿아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나는 노량진역 1호선의 10번 칸에서 출구로 나가기 위해 1-1까지 플랫폼을 하염없이 걸었던 경험이 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최근 개선된 화면에서는 도착 예정인 역의 어느 칸에서 환승이 쉬운지, 어떤 칸이 출구와 가장 가까운지를 안내 화면에서 안내해주고 있다. 이제 사용자가 앱 등 별도의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지하철 이용만 하더라도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앱을 사용하면 도착 예정역이 아니어도 이런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앱을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나, 배터리 이슈 등으로 당장 그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도 지하철을 통해 이런 정보를 바로 알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한 사용자 경험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앉은자리에서도 잘 보이게
서울 지하철 중 가장 오래된 호선인 1호선을 타다 보면, 안내화면을 통해 해당 전동차의 연식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때가 있다.
전동차가 최신에 가까워질수록 차내 스크린의 수도 늘어나고 스크린의 사이즈도 커졌다. 하지만 간간히 안내판과 가장 가까운 좌석에 앉아있으면 애매한 각도 때문에 안내 화면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안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이어폰을 빼고 안내음성에 귀를 기울이거나 미어캣처럼 창문 밖 역사를 보며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곤 했었다. 그러다 최근 지하철을 타고 또 안내화면을 보다가 새삼 보기 편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보니 화면이 약간 좌석 측으로 기울어져있었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각도를 약간 기울이니 정말 앉은자리에서도 안내화면을 보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다고 느꼈다. 안내판과 딱 붙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기존에 보던 것 대비 더 편하게 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앞서 말했던 여러 경험이 쌓이고 더불어 스크린의 각도가 바뀐 것까지 보다 보니 지하철 사용자 경험이 진짜 많이 좋아졌다. 정말 열심히 개선하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번외. N 년만에 지하철 노선도를 바꾼 이유
작년 말 서울시가 40년 만에 지하철 노선도를 변경했다. 기존 노선도가 1980년대의 형태를 유지한 채 노선만 추가되어 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개선 노선도는 다음 4가지 항목을 중심적으로 집중했다고 한다. 1) 노선, 환승역에 8선형 적용 2) 신호등 방식의 환승역 표기 3) 지리 정보 표기 4) 쉬운 노선 간 구분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이중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4) 쉬운 노선 간 구분’ 이었다. 서울시는 색약자, 시각약자, 고령인들도 보기 쉽도록 노선의 색상과 패턴을 새롭게 적용했다고 했는데, 근래에 많이 고려되는 정보 접근성을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기존 노선도에 익숙한 사용자로서 아직 새로운 노선도가 낯선 부분은 있으나, 더 많은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이 노선도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용자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오프라인의 경험이지만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제품의 개선을 정리한 만큼, 개선에 대한 반가움이 크다. 금세 익숙해지고 무뎌지겠지만, 또 어? 이거 편해졌네? 하는 부분을 발견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