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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우람 Jan 12. 2021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본래 나는 여행에 큰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고 가고 싶다는 생각 따위 없었다. 일상을 지켜내는데 전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행에 관심이 없던게 아니라 그저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여행에 목말라 있었고 생각보다 자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시작된 지점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은 직후였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의 토론을 거치면서 그 생각은 명확해져만 갔다.




"사람들은 뭐하러 굳이 여행을 떠나지?"라는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멋진 관광지를 보기 위해서, 지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새로운 만남의 설레임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관광지나 유명한 작품들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일상이 쉽지는 않지만 여행이 이를 해소해주리라는 믿음은 없다. 새로운 만남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여행이라는 주제는 내 관심에서 벗어나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수님이 주관하는 중국 여행(이라 쓰고 현장학습이라고 읽는다)을 통해 공맹의 발자취를 견문하기도 했고, 부산은 세 번이나 다녀왔다. 첫 번째는 아끼는 소꿉친구들과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를 이리저리 경험했고, 두 번째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자전거에 몸을 위탁하여 계획없이 남한강과 북한강을 따라 하염없이 종주길을 달려보기도 했다. 이런 여행들은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었다. 풍경이 좋았고, 새로운 공간이 주는 신선함이 상쾌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나에게 여행은 딱 그 정도의 위치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그리고 함께 읽은 사람들과 여행에 대해 토론하면서, 진지하게 '여행'이라는 단어와 그런 행위에 대해 고찰해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여행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의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해보고자 했다. 해외여행, 국내여행 자전거여행, 도보여행, 패키지여행... 장소, 형태, 방식..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구분되는 카테고리가 달라졌다. 마인드맵이라는 유용한 틀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정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하면 할수록 내 안에서 여행의 범위는 넓어져만 갔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당연하게도 정리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본래 하려던 정리(여행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구분)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행하는 방식에서는 외부 여건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는 완벽하게 고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여행의 '이유'부터 '범위'까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영역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침범당하지 않는 안전지대인 것이다. 나는 나를 속일 수 없다. '내'가 만족해야만 하는 여행이라는 행위는 생각하는 단계에서부터 외부의 다른 생각으로 인해 이유가 변질되고 범위가 달라지면.. 그렇게 타협하는 순간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한다. 현실적인 여건이 발목을 붙잡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내부적으로 타협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국경을 넘어 해외로 떠나야만 일상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느낀다. 그렇게 일상의 경계 밖으로 나가야만 여행의 '이유'가 발동한다. 그 이유가 힐링이나 관광이던지 아니면 자유와 설레임이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스스로의 내면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던지 뭐든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여행을 떠나느냐에 따라서 패키지, 도보, 자전거, 배낭 등 적절한 형태로 계획이 수립된다. 외부의 간섭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이 단계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일상과 여행의 경계지점에 대한 정의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매우 가깝기도 하다. 이들은 여행과 일상의 전환이 빠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여행이고 어디까지가 일상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힐링과 자유가 필요하면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한 집이 여행지가 되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타인이 되고자 하면 홀로 도심을 방황하거나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한다. 책 속의 말을 빌리자면 일시적으로 그림자를 지워버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거나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전거를 극한까지 타기도 한다. 도심 한 복판에 우뚝 선 기라성같은 건물의 숲을 거닐거나 멋진 길거리 버스킹 공연을 관람할 때도 종종 놀라움과 새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그 동안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행동들이 사실은 여행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물론 인종, 관습, 심지어 가치관까지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은 그 놀라움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겠지만 바쁜 일상과 타협하며 그 방식이 이런 형태로 등장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를 여행이라 부르기로 했다. 굳이 구분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몰랐던 나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의 이유>는 고마운 책이다.

이 또한 하나의 여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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