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작가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김형석 작가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었다.
그는 1920년에 세상을 맞이한 100세 노인이다. 대한민국이 아직은 임시정부이던 시절..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시절을 몸소 겪은 사람이다. 시인 윤동주가 독립을 노래하고, 도산 안창호와 백범 김구가 대한민국을 도모하고,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던 그런 한국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 긴 세월을 돌아보며 느낀 삶의 정수를 보여주려나 싶었다. 어찌보면 마지막으로 자신이 후세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과 사진, 그리고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겪었던 시절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라는 생각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삶을 읽어나갔다.
문체는 마치 할아버지가 청년에게 이야기해주는 구전동화 같았다. 하지만 그 속의 내용은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마치 저자의 사상과 생각이 정답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와 다른 생각들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은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거부감을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읽지못하리라는 묘한 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타협했다. '동년배끼리도 생각이 달라서 부딛히는 순간이 많은데 뭐'라고. 그리고 100년의 경험을 온전히 보존하여 마음속 서랍장에 간직해보자고 말이다. 올해 31세를 맞이한 나와 101세를 맞이한 저자는 그렇게, 편안하지만 어렵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꼰대'라는 단어가 세대 간의 소통 현실을 관통하는 요즘이다. 그 결과 어른들은 입을 닫고 청년들은 귀를 막아버렸다. 삶을 터치하려는 낌새만 보이면 그 의도가 뭐든지 우선 '꼰대'가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나도 흔한 청년이기에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경청했다. 원래 이런 어른들의 경험치는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그는 어른의 끝판왕이 아닌가..!
천천히 읽다보니 행복과 성공에 대한 생각, 결혼과 가정생활, 이혼과 사별 그리고 재혼, 자녀와 친구 이야기, 지인들, 종교와 사상에 대한 의견, 돈과 명예를 대하는 태도, 노년의 삶 이야기 등 저자의 삶에 드러나는 가치관을 구석구석 엿본 느낌이 들었다. 정말 좋은 내용들도 많았지만 역시나 지금의 나와는 공존이 불가능한 생각들도 많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나는 저자에 비해 경험과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이 간극이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살아온 환경과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도 책이라는 형태라서 좋았다. 구전같아서 저자의 생각이 더 와닿았고 글이라서 사색할 시간이 충분했다. 천천히 내 생각과의 차이점을 고민할 수 있었고 그의 생각을 가슴 한 켠 서랍장에 보관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정말 효과적이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마음속을 둥둥 떠다닌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가 않는다. 심지어 뭘 잡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백년을 살아보니>는 여러 주제에 대한 한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리고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글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그의 글에 나를 투영했다. 그렇게 나를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었다. 생각도 못했던 빈 공간을 많이 발견했고, 조금이나마 채워서 다시 둥둥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김형석 작가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었고,
미완의 자서전 <삼십년을 살아보니>를 마음으로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