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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우람 Jun 13. 2021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글

마지막 순간마저 따뜻했던 사람


경기도 연천군에 살았던 김씨 성을 가진 우리 할머니는 일찍이 반려를 여의고 홀로 오랜 시간을 지내셨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사진으로만 할아버지를 보았으니 최소 내 나이는 넘도록 혼자 사셨다. 잘 걷지도 못하는 몸을 유모차로 이끌며 힘겹게 동네 노인회관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할머니. 그녀에게 명절은 참 행복한 날이었다. 심심하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오는 시간이었다. 자식, 손주, 며느리 온 가족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었으니까.


장손이라는 이유 그 이상으로 유독 나를 좋아하셨던 우리 할머니 옆자리는 항상 내 차지였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귀를 만지는 습관이 있었던 나는 잠을 잘 때도 옆에 누워서 귀를 놓지 않았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문득문득 할머니 귀를 만지는 내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습관이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정말 웃긴 사실은 내가 귀를 만질 때 할머니는 항상 편하게 귀를 만질 수 있도록 내어주셨다는 점이다. 가만히 앉아서 귀를 만져지던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할머니한테 뭘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였고 나는 손주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서로의 관계는 무한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할머니에게도 빛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오셨을 건데 내가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팔다리가 저려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할아버지 산소에 갈 때마다 몸이 불편해 항상 산 아래서만 바라보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참 외로우셨겠구나 싶기도 하고,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이 참 많으셨을 텐데 몸이 불편해서 가지 못해서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싶기도 하다.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작스레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정말 너무 빠른 속도로 말을 잃고, 움직임을 잃고, 기억을 잃어가셨다. 노인에게 질병이 찾아오면 면역이 약해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사실을 듣긴 했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할머니가 존재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마음이 아프고 간절해졌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명을 붙잡고 계셨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고 괴로우실 것 같아 보였다. 말과 움직임을 잃은 상황에서 그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싶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참으로 많은 눈물을 보았고 흘렸다. 잘 정돈된 시신이 관에 담기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할머니와의 기억이 빠르게 스치며 나를 때렸다. 화마 속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안식처를 바라보는데 엄청난 상실감이 나를 후려쳤다. 고향으로 가는 장례버스 안에서는 한 줌이 되어 봉안함에 담긴 할머니를 안고 한 순간도 놓지 못했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내내 사라지지 않은 온기가 나를 덥혀주었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참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몇 번이나 울컥하며 눈물을 삼켰다. 가족들은 슬픈 마음을 애써 이겨내 보고자 간간히 농담을 던졌다.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시도였지만 잠깐의 웃음 뒤에는 언제나 고요한 침묵과 애도만이 남아있었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 할머니와의 추억을 잊고, 할머니의 존재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소중했고 아름다웠던 기억이기에, 그 순간마다 이 글을 읽으며 나의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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