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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닉 Oct 24. 2017

연애상담일기 - 빚 있는 남자의 프러포즈




그가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을 때, 주머니엔 삼만 원뿐이었다.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탔다고 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엔 연예인 매니저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매니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몸으로 부딪히면 안 될 게 없다고 여기는 이십 대의 청춘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았다. 엔터테인먼트를 가장한 학원에서 전단지를 뿌리고 영업일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원하던 연예인 매니저가 되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운전대를 잡아야 했고, 스케줄 관리를 못하는 날은 방송국 로비에서 연예인에게 뺨을 맞았다고 했다.


그 당시 룸메이트이기도 했던 그는 하루 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삼만 원 갖고 서울에 왔는데 이 정도면 성공한 거죠  


룸메이트였던 그는 밝고 긍정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곤란한 상황이 닥쳐도 의연하게 받아들였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가수, 개그맨, MC, 연기자 등의 매니저를 거쳐서 작은 회사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연락을 주고받던 그가 상담할 게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일은 어때? 잘 돼가?"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들쑥날쑥해요."


"일이 힘들구나."


"힘들지 않아요. 일은 원래 그렇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상담이야?"


"그게 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요."


"축하해. 어떤 사람이야?"


"일하다 만난 사람이에요."


"나도 모르게 연애 잘 하고 있었네."


"나중에 같이 밥 한번 먹어요.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그럼 결혼 소식 전하러 온 거구나."


"아직 제대로 된 프러포즈도 못 했어요. 실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예요."


"멋지게 프러포즈하는 방법이라도 물으러 온 거야?"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이기적이라고 말해서요."


"네가 이기적이라고?"


"작은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업하면 아무래도 이리저리 들어가는 돈이 많으니까."


"그래서 대출도 받고 빚이 좀 있어요."


"빚이 많아?"


"3억 정도 있어요. 저에겐 큰돈이죠."


"큰돈이지. 빚 때문에 고민이 많겠구나."


"빚도 있고, 수익도 고정적이지 않는데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이기적이라고 하네요. 저는 그냥 그 사람하고 살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럼 여자 친구에겐 빚 이야기는 했어?"


"말했어요."


"여자 친구는 뭐라고 해?"


"응원해 주더라고요. 빚이야 돈 벌어서 갚으면 되지 않겠냐고."


"그랬구나. 고마운 사람이네. 그럼 연애한지는 얼마나 된 거야?"


"삼 년이 넘었어요."


"이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구나. 여자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네 아직 제대로 프러포즈는 못했지만, 서로 같은 마음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럼 아무 문제도 없지 않아?"


"이상하죠? 그럼 아무 문제도 없는 건데... 사람들이 자꾸 저보고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게 신경 쓰여서요."


"신경 쓰이겠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싶은 결혼식일 텐데... 이기적이란 말을 들었으면 당연한 거야. 사람들의 말 중에 뭐가 가장 신경 쓰이니?"


"나만 생각한다고요. 빚도 있고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내가 원한다고 결혼을 서두르는 거 아니냐면서 이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 말처럼 서두르는 거야? 아니면 지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 지금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니?"


"실은 지금이 저에겐 인생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순간이에요. 알죠? 제가 삼만 원 들고 서울 올라 온 거요."


"그럼 누구보다 잘 알지."


"매니저 되겠다고 지금까지 애쓴 것도 잘 알죠?"


"넌 참 성실하게 잘 했어. 지금은 매니저이자 회사 대표잖아."


"맞아요. 잘 때가 없어서 모텔 옥탑방에서 지낸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살았어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제 손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그런데 워낙에 밑천이 없다 보니 빚을 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구멍가게를 하나 하려고 해도 대출을 받아야 하잖아요. 모든 열심히만 하면 돈이 벌릴 줄만 알았는데 생각처럼은 안 되더라고요.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열심히 해서 작은 회사도 운영하고 있는데 빚이 좀 있다고 결혼을 미루는 게 싫어서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게 그렇게 이기적인 건지 모르겠어요."


"넌 지금이 가장 행복하구나."


"빚이 있을 뿐이지... 원하는 일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행복하죠."


"주변 사람들이 네가 부러워서 이기적이라고 하나보다."


"오히려 여자 친구랑 함께 사는 게 돈을 더 아낄 수 있어요. 같이 모으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왜 모든 게 갖춰져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가 이상한 건 가요?"


"네가 삼만 원밖에 없을 때랑 비교하면 우습지 않니? 삼만 원밖에 없을 때는 그것마저 없으면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빚이 3억 있으면 3억 이상 있어야 플러스니까. 사람들은 빚을 더 크게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그러네요. 삼만 원 있을 때는 항상 플러스였는데... 빚이 생기니까 돈을 벌어도 번 거 같지가 않더라고요. 부담만 되고..."


"너도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라고 하지만 삼만 원 있을 때의 여유는 없다."


"그러게요. 내가 진짜 이기적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도 해봤어요. 빚을 진 것도 제 욕심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결론을 내렸니?"


"네 결혼하려고요. 이기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아요. 계속 흔들릴 거예요. 제가 매니저 생활만 벌써 8년째예요. 큰 욕심을 내고 회사를 차린 거는 아니에요. 단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에요. 비록 늦게 빚을 갚을 수도 있겠지만 행복하게 살 자신 있어요. 최근에 일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것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미루지 않을 생각이에요."


"일이 없어서 힘들 때도 많았겠구나."


"힘들어도 여자 친구랑 함께 있으면 힘이 나고 행복해요. 그래서 더 함께 있고 싶나 봐요."


"여자 친구도 같은 마음이라면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아. 그런데 결혼은 둘만 하는 게 아니니까. 부모님에게도 잘 말씀드리고."


"매니저가 되겠다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방황을 많이 했었어요.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니고 기술이나 재주도 없었으니까요. 매니저도 드라마를 보다 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전에는 특별한 목표가 없었는데 목표가 생기니까 사람이 변하더라고요. 일도 재미있어지고요. 제 연기자는 제가 직접 메이크업도 해요. 의상도 함께 고르고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좋은 게 더 많으니까 좋은 것만 생각했어요. 눈물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다시 목표를 세우고 웃으면 일했어요. 밝은 미래를 꿈꿔요.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 싶지 않은가 봐요. 언제 해도 똑같다면 지금 하고 싶어요. 여자 친구 부모님께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요."


"네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거 잘 알고 있어. 네가 남 모르게 흘렸을 눈물도. 남들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말고, 여자 친구랑 부모님에게 네 진심을 보여주면 잘 될 거야. 결혼도 일도."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긴. 네 말이 다 맞아. 나중에 잘 돼서 하겠다는 말은 대게 허무하게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정말 잘되기라도 하면 성공의 기준이 높아져서 끝도 없이 미룰 수도 있고. 마음이 변해서 더 좋은 사람을 기대하기도 하고... 그럼 진짜 이기적인 사람이 될 거야. 남들이 뭐라고 하건 네 소신껏 책임질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 같아."


"불안했어요. 가진 게 없을 땐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뭐든 거침이 없었는데... 가진 게 많아지니까 불안해졌나 봐요."


"그 가진 것 중에 빚도 포함되는 거야?"


"그것도 가진 거죠. 진짜 없을 때는 빚조차 얻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구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빚조차 질 수 없구나. 그래도 좋은 건 아니니까 그 빚 얼른 갚았으면 좋겠다."


"네. 빚 때문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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