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중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눈을 뜨면 8시 10분 전이거나 심지어 30분 전이기도 했다. 황당해서 더 자려고 하면 8시를 외치는 소리가 더 커져서 억지로 눈을 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분명 거짓말이었다. 하루를 거짓말로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본인들은 매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내가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하면 버럭 화부터 내는 게 아이러니였다.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소한 과장은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거짓말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비교적 관대하게 봐주는 사람도 있다.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거짓말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어떤 거짓말을 한 거야?"
"대학을 속였어요!"
"남자친구가 직접 이야기했어?"
"네. 본인 입으로 말했어요. 처음엔 누구나 알만한 명문대학을 다녔다고 말했어요. 취직이 돼서 학교는 휴학했다고 말했어요. 전 그 말을 믿었고요."
"명문대에 다녔다는 거짓말을 했구나. 왜 그랬는지도 물어봤니?"
"물어봤어요. 왜 이제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했으니까요.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는 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고요."
"그랬구나. 거짓말한 게 계속 마음에 쓰였던 거구나."
"아무리 잘 보이고 싶어도 그렇지... 왜 없던 사실을 만드는 거죠?"
"그럼 남자친구는 다른 대학에 다닌 거야?"
"아니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교육받아서 지금의 직장에 들어갔대요.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열등감 때문에 그런 걸 거야."
"정말 열등감 때문에만 그런 걸까요?"
"그럼 뭐 다른 게 있니?"
"남자친구의 고백을 듣고 그런 경우를 찾아봤어요. 남자친구 같은 사람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일을 비관해서 나보다 더 나은 나를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병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리플리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고 해요."
"영화로도 제작된 리플리 말하는 거지? 영화 제목도 리플리였고, 맷 데이먼이 리플리로 나왔던?"
"맞아요. 그 영화 속의 리플리가 등장해요. 제 남자친구가 리플리였어요."
"너도 과장이 심하다. 나도 영화 속 리플리가 기억나. 그런데 영화 속 리플리는 거짓말로 남의 인생을 가로채는 사람이잖아. 살인까지 한 범죄자고. 작은 사실을 부풀리는 것도 거짓말의 일종이야."
"용서하기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한 번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죠?"
"회복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그런데 넌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네."
"이렇게 상담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거짓말하는 거에 예민해서 그래요. 지금까지 저에게 했던 모든 말이 다 거짓말이진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랬구나. 어쩌면 남자친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학벌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 너에게 고백하는 걸 보면 너에게 만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일거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숨겼던 비밀을 고백하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니까."
"차라리 영원히 모르게 숨기지라는 생각도 들었는 걸요. 제가 끝까지 몰랐으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끝까지 숨길 수 있는 거짓말은 세상에 없어."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죠?"
"영화 속의 리플리는 자신의 인생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했지. 멋지고 좋아 보이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그의 인생을 가로챘으니까.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은 해 보잖아. 나도 모르게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하게 되고, 그게 정말 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야."
"전 그렇게 과장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입시 준비할 때 대학만 가면 잘생기고 멋진 남자 많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 더 좋은 대학에 가면 더 멋진 남자이 많다는 얘기도! 그것도 전부 과장된 말이잖아."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나도 농담 아니야. 남자친구가 악의를 가지고 너를 속인 건 아니란 뜻이야. 그렇다고 거짓말을 옹호하는 건 아니야. 이제는 아무리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네 마음에서 믿지 못한다면 관계가 힘들어져서 하는 소리야."
"맞아요.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사귈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좋죠?"
"그 결정은 네가 해야지. 내가 대신해 줄 순 없어. 만약 이제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야. 다시 한번 시작하고 싶다면 전적으로 신뢰해야 좋은 관계가 될 거고."
"인생은 항상 결정을 강요해요."
"강요가 아니라 사랑하는 과정인 거야."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않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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