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렛미인(2008)
렛미인의 12살 오스칼은 왕따 소년입니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오스칼을 괴롭힐수록 자신의 강함이 증명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뭐든 사람에겐 딱 부러진 이유가 없을 때가 있으니까요. 특히 청소년 시절 그런 경향이 짙게 나타나죠.
오스칼은 새로 이사 온 이엘리와 친구가 됩니다. 그녀는 오스칼이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알고 대항하라고 충고합니다. 당하고만 있지 말고 되받아치라고. 오스칼은 엄마에게도 이혼한 아빠에게도 못 했던 말을 이엘리에게 할 수 있었죠. 너무 가까운 관계라서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처음 만난 사람에겐 오히려 쉽게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동갑의 친구라면 마음을 열기가 더 쉬워집니다.
오스칼은 이엘리의 충고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되받아 쳐 줍니다. 이엘리의 등장으로 오스칼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도 그 전과 달라지고요.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우리를 변화시킨 건 새로운 관계들이었습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환경은 오히려 나를 가두지만 우연히 만난 친구가 새로운 세상을 안내하는 것이죠. 영화 렛미인의 이엘리처럼요. 그녀는 뱀파이어였습니다. 12살에서 성장이 멈춘 흡혈귀였습니다. 무려 200년 동안 12살로 살고 있는 소녀였죠.
그녀는 뱀파이어이기에 사람의 피를 마셔야 살 수 있었죠. 그녀 대신 사람의 피를 구하러 다니는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호칸이었죠. 그는 그녀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모아 그녀가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녀는 200살도 넘었으므로 어쩌면 오스칼처럼 어린 나이에 만나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였고, 그게 발각되자 그녀를 위해 자신의 얼굴에 황산을 부어 신원을 감췄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그녀를 위해서였던 호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을까요. 아님, 자신의 인생을 후회했을까요? 죽어가는 그를 보는 이엘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영화 렛미인은 사랑에 대해 묻습니다. 영원히 살아가는 이엘리의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서슴없이 남을 해치는 것에 대한 물음입니다.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복수하려는 패거리를 남김없이 죽입니다. 오스칼은 자신을 지켜준 이엘리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와 먼 여행을 떠납니다.
오스칼은 어쩌면 호칸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그녀를 지킬지도 모르죠. 오스칼 역시 호칸처럼 늙어가겠지만 이엘리는 여전히 12살 소녀로 남아 있을 테고요. 오스칼은 죽겠지만 이엘리는 죽지 않고 또 다른 오스칼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영화 렛미인을 볼 때마다 같은 곳을 보며 늙어가는 사랑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됩니다. 소복이 쌓이는 눈을 보며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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