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아 Jan 10. 2024

너희는 절대 이혼하지 마라 1

당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이혼은 없다 part1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돌아와서 급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하나의 취미가 있었는데 바로 '마카롱 만들기'였다.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게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나만의 취미라는 것을 영위하기가 힘들다.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아이들 때문에 나의 모든 세상은 아이들이 되고, 아이들의 모든 세상도 '엄마'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걸음마를 떼고 애기말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사회-어린이집-이 생긴 뒤부터 조금씩 엄마들에게 자유시간이 생기긴 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심도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모두가 잠자리에 들면 집에서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카롱 만들기였다. 밤에는 주로 마카롱 꼬끄와 크림을 만들어 냉장을 해 놓고, 다음날 오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마카롱 조립을 시작한다. 그렇게 형형색색 만들어진 마카롱을 보다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카롱은 생각보다 예민한 녀석인데 계량이 잘못되거나, 습도가 안 맞거나 또는 오븐 온도가 적절하지 않으면 꼬끄가 잘 부풀어오지 않는다. 로스율이 높기 때문에 제과점에서 구매할 때면 손바닥 절반도 안 되는 녀석이 2천 원이 훌쩍 넘는 가격으로 변신한다. 칼 같은 계량, 적절한 온도와 습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때만 뾱! 하고 튀어 올라오는 꼬끄를 보고 있자면 무언가 이루어냈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게다가 그런 노력의 결정체를 누군가 맛있게 먹어준다면 천연색소와 프랑스산 버터, 샹달프 잼을 가득 넣은 마카롱을 무한정, 그것도 무상으로 공급할 만큼 마카롱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날 저녁도 나는 마카롱을 만들기를 기대하며 아몬드가루와 슈거파우더를 꺼내놓았다. 지난번 만들었을 때 반응이 좋았던 핑크 마블 꼬끄에, 천연 바닐라빈을 갈아 넣은 버터크림과 달콤한 딸기잼을 넣을 예정이었다. 하교 후 아이들과 친구들이 우르르 놀러 왔을 때 자랑하듯 꺼내놓을 생각이었다. 주말에는 친구들도 나눠줘야지 하면서 예쁜 포장지도 골라놓았다. 그렇게 고요한 밤에만 이루어지는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랐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마샬 액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Eric Clapton의 "Change the World"를 듣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이다.

I was married.


  나는 결혼을 했었다. 현재는 '돌싱'으로 불리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인구 소멸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초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나 자신이라 생각하면서 웨딩마치를 올렸던 과거의 나는 23살이었다. 비교적 신속한 결혼이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의 시선으로 스물세 살의 여대생을 본다면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젖살이 오른 아기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엿한 성인으로 스스로 선택한 결혼이라는 길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또래의 학우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걷는다는 자부심, 학업과 가정을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어린 신부' 그 자체였다. 꽃길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그때, 단 5개월 만에 행복한 가족을 꿈꾸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결혼 5개월 차의 청초한 새신부는 여느 연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칼로 물 베기를 하고 있었다. 가벼운 체벌이 일상이었던 90년대에 초, 중, 고등학생을 보냈지만 따귀를 맞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무시하고 있던 사실 중 하나는 남녀 간의 힘 차이였다. 그것이 그토록 극심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당시의 나는 힘의 차이는 '어른 vs 아이' 혹은 '운동선수 vs 일반인' 정도에서만 존재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하디 순한 연년생의 남동생을 둔 나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동년배의 남학우나 대학 선배들 모두 나에게 힘을 자랑한 적이 없었다. 초, 중, 고 시절에 당한 체벌들은 피멍이 들 정도로 아팠으나 그것은 '어른들'과 아직 '학생'인 나의 간극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에 스무 살을 넘겨 성인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어린 신부는 힘이 세졌을 거라는 아니면 강단이 강해졌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 키가 15cm 이상 더 큰 성인 남성이 온 힘을 다해서 날린 따귀에 그런 막연한 기대감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내 몸은 붕 떠서 1m 이상 나가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두 번째 손이 날아왔으며, 연속으로 한 번 더...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이혼 이혼 기회를 마주했다.

작가의 이전글 미완의 과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