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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07. 2022

Camphill Village 방문기

펜실베이니아 장애인 공동체 마을을 돌아보고 나서

보통의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면서 독립하는 반면, 특별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의든 타의든 돌보미가 되어 평생 곁에 있어 줘야 한다. 그리고, 예외 없이 부모와 헤어져 혼자서 살아가야 할 그날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입구 간판

밀알 부모들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진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난 2월 말, 장애인 공동체를 견학해 보고 싶다는 부모들이 있어 몇 군데를 섭외하다가 펜실베니아주 중서부에 위치한 Camphill Village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주말이면 그곳의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매달 첫째 금요일만 일반인에게 개방을 한다고 것이다.  그래서 방문 날짜로 잡힌 것이 지난 4월 1일이다. 시간도 그쪽에서 정해준 오후 2시이다.

중부 뉴저지 집에서 차로 대략 2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다. 76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골길을 10여분 달리니, 노란 개나리가 입구에서 우리 방문객들을 환히 반긴다. 이미 4월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뉴저지의 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되려 그 2주 전에는 눈발까지 날리기도 해, 꽃샘추위로 봄기운에 신이 나서 이곳저곳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개나리, 철쭉, 벚꽃들이 갑작스러운 추위에 화들짝 놀라 움츠렸다.  

작업장을 향하는 주민

하지만, 이곳에 도착한 우리들은 꽃대궐에 들어온 것처럼 온갖 꽃들이 구름 아래와 언덕 사이를 지나는 산들바람에 몸을 흔들며, 입구를 막 들어온 우리를 향해 차창밖에서 'Welome to the our villege'라고 외치는 듯했다. 몸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동차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곳의 행정을 보는 Craig 씨가 방문 전에 전화로 귀띔을 해줬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앞에 리어카를 손수 끌고 가는 공동체의 식구와 마주쳤다.


이곳이 처음이라 차를 길가에 세우고 방문객인데 Main Office가 어디냐고 물으니,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더 많이 물어봐 달라는 듯 세세히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 방문객에게 친절히 가르쳐 줬다. 이 공동체의 면적은 약 435 에이커, 즉 이해하기 쉽게 대형 축구 경기장 272개 규모의 크기니 가히 도회지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넓고 트인 하늘 아래의 마을이다.

뭉게 구름 아래의 목장과 곡물 저장소

뉴저지는 나무가 많다고 해서 Garden State라 불리지만, 방문지인 이곳의 풍광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전형적인 고즈넉한 농촌 마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 마치 7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방송했던 TV 시리즈 '초원의 집 (Little House on the Prairie)'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자아내 물리적으로 40여 년 전의 미국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과수원과 목장

 이제 곧 파릇파릇한 목초로 덮일 광활한 목장, 곡물들을 탐스럽게 담아둘 수 있는 창고, 각종 과실수가 열병하듯 줄을 지어 심겨진 과수원, 방목해 놓은 한쌍의 말들이 언덕을 거니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자연과 타협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왔던 아들 예준이가 '피피.."하고 급한 소리를 하니 공동체 어귀에 노란색으로 넉넉히 지워진 집이 보였다. 그 집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아들과 함께 문을 두드리니 영국식 발음을 하는 청아한 목소리의 중년 여인이 나와 이 낯선 방문객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급해 보이는 아들에게 화장실을 안내했다.

수양 벗꽃과 작업을 돕는 자원봉사자들 차량

 이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은 약 110명 정도. 대부분 장기간 함께 거주하다 보니,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맞힐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볼일을 보고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벚꽃 나무가 이 나그네를 맞이해 줬다. 족히 수령 300년은 넘어 보이는 하늘하늘 늘어진 수양벚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공동체가 정식으로 설립된지는 약 60년 전이지만, 이미 독일 기독교 이민자들이 그 이전에 정착해 살아왔다고 하니, 긴 역사만큼이나 이들의 선견지명이 내심 부럽기만 했다.
 

이 마을에서 사는 장애인들은 모두 42명이라 한다. 입주 가능 연령은 20세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평생 본인이 원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을 도와주는 봉사자로 미국 각지나 각국에서 온 독신의 자원봉사자들, 자녀를 데리고 이 공동체에 들어온 봉사자 가족들 그리고 행정이나 재정을 보는 8명의 직원이 함께 이곳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다.

본관 로비와 계단에 걸려있는 액자들

다시 차로 조금 더 언덕길을 올라가니, Main Office가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2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우리를 안내해 줄 Don이란 친구가 우리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먼저 응접실에 앉아 자신을 소개하는데 9년 전에 자신의 딸과 이곳에 들어왔고, 여기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 재혼해서 함께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벽면에 전시된 형이상학적 형태의 파스텔과의 밝은 색상의 그림들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아 마치 미술관 전시회에 온 듯 포근하다. 이들 그림들 역시 미술에 재주가 있는 자원봉사자의 작품이라고 한다.

구입하거나 직접 만든 털로 가공한 각종 직물류

1층의 왼쪽은 도서관과 응접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옷감이나 직물류를 만드는 작업실과 공예품 매점이 위치해 있었다.  2층으로는 안내되지 않았지만 아마 다목적 용도로 사용되는 듯했다. 모두가 사람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라 같은 모양과 색감을 가진 것이 없어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유일한 작품들인 셈이다.


털실로 만든 실내화, 인형, 카펫, 모자, 양말, 목도리 등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교함과 수수함이 베어 나오는 것을 보니 값으로는 도저히 매길 수 없는 Priceless의 아트 작품이라 마치 공예품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카페 한컨에 전시된 물건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실을 뽑아내거나 그 뽑아낸 실로 천을 만들어 나는 직물기계가 있었다. 이것을 직접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제법 나이가 있다고 하니, 한올 한올 실을 엮어가듯 오랜 세월을 아이들과의 추억을 엮어온 셈이다. 이곳 직원의 말로는 현재 한국에서 온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자원봉사자 학생이 2년간 봉사를 약속하고 와 있다고는 하나 만나지는 못했다.


이처럼 많은 미국 밖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공동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배우고 영어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이곳에서 서류상 비자만 잘 발급해주면 미래에 우리가 지을 공동체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옷감을 짜는 직물기계

우리 방문객 이외에 인적이 없는 듯한 이 건물의 아래로 Don이 우리를 안내한다.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데 무슨 염료 냄새가 나서 보니 아래층은 진흙으로 각종 그릇을 빗어내는 도예 공방이 위치해 있다. 위에서 방문객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을 듣고 주의 산만할 법도 한데, 6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털보 아저씨 강사가 수업을 하다 말고 우리에게 반가이 지하실 전체를 차지한 공방 하나하나를 설명해 줬다.

흙으로 도자기를 빗는 아이들과 봉사자, 윤기나는 그릇, 가마에 들어갈 아이들의 작품

도자기 공장의 공정처럼 차근차근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빗은 각종 그릇들이 선반에 단아히 놓여져 있었다. 표면이 까칠한 것과 말끔한 것, 그릇의 끝이 들쭉날쭉한 것과 반듯한 것 등등 아이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감각을 손끝으로 표현한 모습들을 보면서 만라천군의 형상들이 이에 비할 듯했다.

자원봉사자와 막 만들어 낸 도자기류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있고 보조 교사가 학생의 수에 따라 2-3명 정도 함께 수업을 하듯, 이곳에도 아이들 사이에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하면서 아이들을 돕고 있는 모습이 가식 없어 보이고 동생들을 돌보는 듯 세심함이 돋보였다.


15분 정도의 설명을 마치고 다시 메인 로비로 올라와 다른 건물로 갈렸는데 하늘이 시샘을 냈는지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졌다. 그는 걸어서 얼마 안 걸리지만 비를 맞아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분명히 이곳의 사람들은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아이들의 작품 전시장과 공동체 로비, 그리고 상담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벽면에 붙여두었다. 세상 속의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무관하게 부모의 꿈을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한다. 반면,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급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켜 둔 채 자신들만의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시간에 끌려다니는 많은 현대인의 비애를 마치 흉보듯 같은 24시간이지만 자신만의 귀중한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각종 치료에 사용되는 방

말끔히 정리된 방들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미술 치료실, 반사광이 들어오게 설계한 마사지 방, 그리고 약간 어둡게 한 심리 치료방 등등 아이들의 요구에 맞취 햇볕을 조절해 주는 섬세함이 배어있었다. 이런 모든 시설들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자금이 필요하다. 현재의 규칙에 의하면 입주하는 장애인들은 연간 약 4만 불 정도의 비용을 공동체에 지불한다고 한다.


이 비용으로 공동체가 운용되며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재원은 일체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 만일 이런 공식적인 곳을 통해 운용비를 받을 경우, 각종 규제가 있어 자신들이 원하는 공동체를 운영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가령, 필요에 따라 웃막 하나를 지을 때도 각종 허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털로 만든 실공, 뜨게질 하는 아이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그 실습장

건물을 나와 언덕을 약간 내려가 원두막처럼 생긴 곳으로 안내됐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본관에서 볼 수 없었던 뜨개질 하는 아이들이 이곳에 모여서 서로 잡담을 나누면서 남자 여자 구별 없이 두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다목적용 강당과 벽돌로 만들어진 썬룸

큰 Auditorium에는 매 주말 예배용으로 쓰이는 곳이면서, 한 달에 한번씩 이 공동체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함께 바닥에 앉아서 서로의 근황을 묻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계절마다 아이들과 봉사자들이 함께 공연 무대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그때는 공동체 밖의 마을 사람들도 초대를 한다고 한다.

생일 파티장과 강당

막 순이 나고 노란 꽃잎이 앙증맞은 개나리를 탁자 위에 장식해 두었다. 자연을 담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무엇을 얼마 만큼 담아와서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는 꽃을 꺾어온 이의 온전한 주관에 따라 다르다. 하나님은 특별한 가정에 아주 특별한 아이들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 어떤 아이로 자라게 하는 가는 올곧이 부모의 몫이다. 아이가 꽃이라면 부모는 꽃꽂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피자를 굽는 가마

Don이 거주하는 집 옆에 정원에는 무슨 가마 같은 것이 있다. 혹시 도자기를 굽는 가마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피자를 굽는 화덕이라고 한다. 자신이 딸과 직접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고, 화력은 자연 그대로의 장작을 태워서 피자를 월에 한두 번씩 점심때 굽는다고 한다. 그의 자긍심 넘치는 설명을 들으면서 피자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을 연상해 보았다.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그 반죽을 잘 다듬에 모양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화덕을 데우고 피자를 넣어 잘 굽힐 때까지 자신들이 손수 만든 피자의 맛을 연상하는 아이들의 동심에서 분명 그들이 가진 미래의 꿈들도 익어 갈거라는 흐뭇한 생각을 해 본다.

삶의 말년을 장애인과 봉사하며 사는 자원봉사자 주민

약 1시간 반 정도의 방문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데 첼로를 맨 할아버지가 방긋방긋 웃으며 건물을 나섰다. 선 듯 다가가 이곳을 찾아온 방문객이라 소개를 하자, 자신은 이곳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데 사진 뒤에 있는 빨간 벽과 하얀 지붕의 단층집이 자신의 집이라 소개를 한다. 시간이 없어 그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언젠가 이곳에 연주회를 하게 되면 들리겠다고 인사치레의 말이라도 건네자, 웃으면서 그때까지 건강히 살아 있고 싶다고 응수를 한다...

휴가를 내고 밀알 가족들과 다녀온 이번 방문. 오가는 시간이 현지에 머물었던 시간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왔던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다시 차로 되돌려 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니 직선도로라 차의 주행속도를 쉽게 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부모로서 아이들의 느린 발달과 성장에 답답함이 오솔길과 같다면 언젠가 이 앞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아이들의 저마다의 달란트를 함껏 발휘해 볼 수 있는 넓고 긴 고속도로를 인생의 후반부에 달려 준다면야 이보다 더 바랄 것은 없다.

장거리 여행이 피곤했는지 다들 말수가 적다. 운전하는 나로서도 졸리기 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졸면 안 된다. 가장이고 일행의 안전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부모들도 졸면 안 된다. 군대 용어로 '졸면 죽는다'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특별한 아들과 특별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풍이 곱게 물들 이번 가을에는 뉴욕 업스테이트에 위치한 이 공동체와 자매결연을 맺은 공동체를 방문할 계획이다. 밀알의 많은 부모들이 영화 'Back to the Future'처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밝게 바라보고 하지만 늦지 않게 준비하기를 원하고, 나와 우리 아이들의 가족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가족들이 장애가 축복이 되어 더 질 좋은 미래의 삶을 향한 그 꿈이 더 현실적으로 영글어가는 것 같아 피곤한 하루였지만 무엇보다 가슴 벅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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