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배려가 큰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볼링이다. 집에서 일찍 출발한 탓에 아들의 볼링장 약속까지 40여 분의 시간이 남아 그곳에서 약 5분 거리의 한인 마트에 들렀다. 특수학교에서 Field trip으로 마트나, 우체국, 소방서 등을 가기 때문에 아들에게 물건과 과일 이름을 만져보면서 외우는 데 대형 마트보다 훌륭한 교육 장소는 없다.
대부분의 대형 한인 마트가 그렇듯 이곳도 제법 잘 만들어진 Food Court가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잠시 빈자리에 앉아 폰으로 메일 체크하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다.
순간 아들에게 이 화장실은 처음이란 생각에 곧 따라 들어갔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기겁을 하면서 어떤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상이 되버린 나는 그녀에게 내가 아버지고 아들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납득을 해 자신이 더 죄송하게 됐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태연히 나오는 20살 된 아들을 나무랄까 하다가 벽면에 화장실 표기를 보니 크게 "W M" 참 Simple하게도 적혀 있었다. 그 단순함은 정상적인 어린아이들 조차 구별하기 쉽게 해 놓았다. 하지만, 아들처럼 Women과 Men의 숨은 뜻을 쉽게 구별할 수 없는 아들은 대개 남자와 여자의 모양이 그려진 그림으로 구별해서 들어간다.
다 좋은데 이 1%의 부족함이 장애아들은 둔 부모에게는 100% 이상의 장벽으로 느껴진다. 마침 오후에 Bergen Moll에 있는 Whole Food를 들렸다. 공교롭게도 그곳의 남자 화장실은 그림과 글씨, 게다가 점자까지 아래에 새겨 놓았다. 참, 우리 아들과 다른 장애를 가진 시각 장애인 있었구나. 내 아들의 장애만 바라보다 또 다른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미쳐 생각지도 못하는 우를 범했다.
작은 배려.
그 작은 배려가 남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지만,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큰 감동을 넘어 감격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사실 Whole Food에 들린 것은 약 30년 전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한쪽 팔 빼고 전신 마비라는 큰 사고로 지금도 Group Home에서 생활하는 한 형제에서 썰어서 파는 수박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둘다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지만 그날 있었던 아들의 화장실 사건(?)은 차마 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형제는 대소변이 보고 싶어도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기저귀에다 실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나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과 달리, 의식은 멀쩡한데 자신의 뒷처리를 스스로 못하면서 30여년을 살아온 그의 고된 인생 앞에서 아들의 화장실 이야기는 그저 사치였다. 그리고 앞으로 생명이 다하는 기약없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그에게는 요원한 꿈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졸립다는 말에 그의 방을 나갈려는데, 86세의 노모가 방문을 들어섰다. 잠시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모자가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떠나자 노모가 우리와 함께 복도로 따라나오면서 하는 그 말이 나의 정수리에 꽃혔다.
"아들이 살아 있어 줘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몰라요"
30년전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급히 미국의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도착한 후, 3개월가 그 형제는 코마 상태였다고 들었다. 그런 아들에게 의사가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는데 기적과 같이 코마에서 깨어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화장실 표시만이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남녀 화장실 구별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걸어서 화장실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내가 평생을 화장실을 다니면서도 단 한번도 화장실 다녀와서 감사의 마음을 가진 적이 없는 나에게 "살아만 있어 줘서 고맙다"는 그 노모의 진정한 감사의 말. 그 가슴 아리는 말에 숨쉬고 있는 것도 축복이란 지극히 명료하지만 반드시 곱씹어 보고 또 봐야 할 말로 내게 다가 왔다.
혼자서 볼일 볼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 만으로도, 설령 돈을 좀 못 벌어도, 아이비리그를 못 가더라도, 결혼을 아직 못하고 살아도 숨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모든 허물과 불평 불만을 덮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이 오늘 아침에도 숨쉬고 자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로 넘치는 하루를 또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