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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15. 2024

1.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은 이미 히말라야로 

2017년에 딸 예지를 데리고 안데스 산맥이 아름드리 자리한 콜롬비아를 다녀온데 이어, 2020년 10월 초순에는 18살인 아들 예준이를 데리고 험준한 만년설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떠받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품고 있는 네팔에서 2주간 산을 타고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안데스가 여인의 넉넉히 펼쳐진 치마저고리의 하늘거리는 자락이라면 이 히말라야는 남자의 두루마기의 하얗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동정과도 같아, 해발 8,0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만도 무려 14개나 된다. 그래서인지 백두산보다 두 배나 더 높은 6,000미터 이하의 산봉우리들은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로키산맥의 최고봉인 콜로라도주의 위치한 엘버트(Mount Elbert) 산이 4,400미터 정도이고, 알프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브랑(Mont Blanc)이 4,800미터 정도라 이 역시 고도로만 치자면 에베레스트의 반 정도이니 가히 세계의 지붕이란 말이 실감 나게 하는 수치이다.

네팔의 산골 마을

하지만, 내 아들 예준이는 나의 아들이기도 하거니와 아내의 아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딸 예지처럼 고산병으로 중간에 안데스 산맥을 하산해야 했던 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경로로 조사를 해보니 2,5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하는 고산병(高山病)은 기존의 등산가들의 건강상태나 체력관리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탓에 히말라야를 오르는 이들이 자신의 등반 경험을 과신하면 더더욱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 고산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아무튼, 현지의 네팔 가이드랑 몇 주전에 직접 연락을 해보니 우기가 끝나고 날씨가 청명한 10월 초에 입산(入山)이 좋다고 권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지에 대한 승낙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항공권 예약을 해 둬야 한다고 하니 마냥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물론 나와 아들에게는 히말라야 등반이 처녀(處女) 등반이라 처음부터 무리를 할 수 없고 앞으로 남은 생애에서 언젠가 히말라야의 고봉(高峰)들을 등반할 시간은 고맙게도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반 등산객에게도 인기가 많은 히말라야의 최고봉들 중 10번째로 높은 안나푸르나 봉의 절반에 위치한 ABC(Annapurna Base Camp)까지 가는 코스를 아들과 같이 등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뉴욕 JFK를 떠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는 직항이 없어 두바이를 경유해 걸리는 소요 시간만도 총 18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높은 산을 등반하려면 미리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하기에 퇴근 후, 언덕을 오르내리는 자전거 하이킹, 농구, 조깅 등으로 아들과 함께 체력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안나플루나의 설봉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 있다. 직장까지 다니면서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히말라야에 오르려고 하는가? 아들은 그곳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가? 자기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을 데리고 무슨 변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아들과 21년을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로서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몇 년 전 차 케비넷에서 처박아둔 CD를 틀어주자 그것을 기억해 내며 흥얼거린 적이 있었고, 차 타고 가다가도 낯익은 레스토랑을 지나가면 손가락을 가르치며 파는 음식을 말하곤 했다. 그러니, 분명 이 아들에게도 눈 앞에 웅장히 솟아 오른 만년설이 덥힌 산을 처음 보고 그도 느끼는 바가 분명히 있고, 그것이 아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스스로를 한계에 도전케 해서 이 험한 세상을 이기는 힘을 조금씩이나마 키워나가야 한다. 어미 거북이가 갓 부화한 어린 새끼 거북을 넓고 험한 대양으로 내쫓으며 생존의 방법을 가르치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 길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길이었다면 나는 아들을 데리고 갈 이유도 없거니와 데리고 갈 필요도 못 느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부자(父子) 둘이 떠나면 재미없으니, 산악회나 동호회 회원이나 다른 가족들끼리 떠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과 나만으로 조촐한 행단을 꾸리기로 했다. 시끌벅적 관광버스 타고 떠나는 여행에서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은 느낄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영혼 그윽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자아의 고요함은 좀처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숨어 있는 자아는 평범한 일상에서 찾는 것보다 자신이 힘들고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더 간절히 찾아온다. 그러기에 나의 육신을 그 만년설의 기슭에 보름간 맡기며, 말없는 아들의 고독까지도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이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외로움과 고독은 부정적인 감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로지 투박한 돌을 밟으며, 세월을 힘겹게 이겨온 휘어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세월을 녹여가며 흘러내리는 계곡의 맑은 물을 마시면서, 고산의 차디찬 칼바람이 휘돌아오는 산골짜기 언덕에서, 태고의 웅장함을 말없이 지켜온 만년설이 덮인 도도한 산봉우리를 우르러 보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 부자를 기다리고 있는 유일한 벗이 될지 모르겠다.

너와로 지붕을 덥은 네팔의 시골집


이 등반의 이모저모를 조사하는 동안 위의 사진처럼 납작한 돌의 너와가 지붕 위에 깔린 시골집 사진을 발견했다. 계곡으로 불어오는 강풍에서 지붕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거운 것으로 덥어 둔 것들이다. 세상 잘난 맛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서 이런 자신의 겉멋과 교만을 지긋히 눌러주는 그런 너와와 같은 존재의 필요성을 이번 산행에서 느끼고 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다.

허덕거리며 설산을 향해 자갈길을 걸으면서 그간 세상을 향해 왔던 무한한 욕망을 이 준엄한 자연을 통해 내 존재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아를 스스로 누르고 잠재우는, 그래서 더욱더 성숙한 자아를 고독 가운데서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아들과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이외의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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