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야마에게서 불안이가 보이다.
*오래간만에 발행인데요. 워밍업이 될지 이게 정말 영영 마지막이 될지는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이 리뷰에는 ‘퍼펙트 데이즈’와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어느 화장실 청소부의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여줍니다. 똑같은 루틴에 반복되는 하루더라도 조금씩 달라지는 인생을 경험하죠. 그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게 됩니다.
청소를 하다 누군가가 남겨놓은 쪽지에는 빙고판이 걸려 있습니다. 외로웠을 미지의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답장을 받을 때의 기분은 묘할 것입니다. 아야와 니코는 히라야마의 카세트테이프에 관심을 갖습니다. 요즘 MZ들은 모르는 생소한 도구죠. 반대로 히라야마에게 스포티파이는 새로 생긴 가게 이름에 불과하고요. 화장실 청소에 자부심을 갖는 것처럼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죠. 타카시가 희귀 중고 테이프 음반이 돈이 되니 팔라고 해도 거절하죠. 하지만 차에 연료가 떨어지면 그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요.
하라야마의 여동생이 찾아와 딸을 데려갈 때도 오빠가 청소하는 일에 놀랄 법도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일본 화장실, 빔 벤더스 그리고 야쿠쇼 코지라는 묘한 만남이 이색적인 영화죠.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그냥 홍보영상으로 생각하기 쉬운 이야기를 기갈나게 만들어요. 빔 벤더스의 입장에서는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천박하거나 더러운 사람으로 묘사한 게 아니라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얘기해요. 그렇다고 엄청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게 아닌 평범한 소시민으로 이야기하고 있죠.
그래서 이 영화를 짐 자무쉬의 ‘패터슨’과 같은 듯 다른 영화라고 얘기하고 있죠. 패터슨은 시를 사랑했고 히라야마는 사진을 좋아해요. 자신만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프라이드를 지키고 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죠.
이런 역할을 야쿠쇼 코지에게 맡긴 것도 신의 한 수죠. 히라야마는 밤마다 꿈을 꿔요. 그날 경험한 것일 수도 있고 숲과 나무 강 등의 자연의 모습이기도 해요. 악몽은 아닌 게 분명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신 분이라면 ‘코모레비’란 단어가 등장해 묘한 여운을 줘요. 우리 삶은 그렇게 완벽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아요.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죠. 평범한 햇빛 속애서 보게 되는 행복은 그래서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두 번째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히라야마에게 불안이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인사이드 아웃 2’에 불안이는 이 작품의 핵심과 같은 존재였는데 묘하게 자주 미소를 짓고 있는 히라야마는 기쁨이가 메인인 것 같지만 사실 슬픔이와 불안이가 왔다 갔다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히라야마가 주말마다 가는 헌책방에서 100엔짜리 문고판 헌책을 골랐는데 그 고른 책을 보고 서점 주인이 그러죠. (파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공포와 불안이 별개임을 정말 잘 그린 작가’라고 말하며 탁월한 선택을 했다며 칭찬하죠. 공포와 불안은 다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공포는 곧 불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히라야마가 꾸는 흑백 꿈은 악몽이 아니에요. 그냥 평이한, 개꿈스러운 무난한 꿈인데 이것은 공포보다는 불안을 숨기고 있는 느낌이죠. 어른이 되면 기쁨이 사라지고 불안이 생겨난다는 얘기는 공감할 수밖에 없죠. 라일리의 감정 조정실에 조종관은 아직 기쁨이 메인이지만 얼마든지 바뀔 수 있죠. 인간은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라일리의 불면증에 시달리는 장면이야말로 공포인데 어떻게 보면 히라야마의 불안보다도 더 한 단계 나아간 모습이에요. 근데 이게 슬픈 게 어른이 되어서도 이 공포를 꿈에서라도 꾸면서 차라리 떨쳐내 보려는 시도라도 할 텐데 히라야마의 꿈은 실체도 없어요. 그는 삶도, 꿈마저도 소극적이란 생각이 들어 서글퍼 보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도 지금 불안한 상태고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물론 지금도 완벽히 잠드는 건 아니지만 사채에 쫓기고 앞날이 불안해 잠못든 적이 많았어요.
우리는 결국 기쁨이와 불안이랑 슬픔이 셋이 왔다 갔다 하는 반 공황상태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엔딩에 히라야마의 클로즈업을 보세요. 이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에요. 결국 행복한 척 살아가는 우리에게 ‘퍼펙트 데이즈’는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슬픈 영화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한편으로는 유튜브에 소개된 침착맨의 ‘인사이드 아웃 2’의 리뷰처럼 진정한 빌런은 기쁨이고 불안이야 말로 의외로 현명한 감정이었다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퍼펙트 데이즈‘와 ’인사이드 아웃 2‘를 같이 보면 아마도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기쁜가요? 우울한가요? 아니면 불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