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시대, 그렇게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우울증 세계 1위…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이륙했지만 IMF로 국가만 무너진 것이 아닌 개인의 자존감도 추락했죠. 일에 치이고 이런저런 현실에 치이며 그냥 이 도시를, 이 나라를 뜨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잠시 영화 두 편으로 이 도시, 이 나라를 떠나보려고 합니다. 영화 ‘문경’과 ‘한국이 싫어서’ 입니다.
어느 문화 관련 업체. 팀장 격인 문경은 후임 하원과 계약직 초월과 함께 팀을 운영하죠. 초월의 기획력으로 미디어 아트 행사가 큰 성공을 거두는데 하원은 그의 공을 가로채고 윗선은 두 번 이상이나 인턴을 했던 그에게 정규직을 내어줄 만하는데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고문만 주고 약속은 지키지 않죠. 회식자리를 박차고 나온 초월은 남은 연차 휴가를 쓰고 퇴직해야 하는 상황. 문경도 안타까운 마음에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쳐 병원행으로 이어지죠. 어렵사리 3일의 휴가가 생기고 문경으로 무작정 향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도주 중인 강아지를 못살게 굴던 남성들에게 용기 있게 말하는 비구니 스님을 만나게 되죠. 명지스님이라는 법명을 가진 그의 출가 전 이름은 가은. 두 사람은 길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동네를 수소문에 강아지 주인을 찾기로 합니다. 그러던 중 유랑이란 소녀와 같이 사는 일명 ‘유랑 할매’를 만나 극진 대접을 받죠. 소녀는 은둔생활 중이고요. 문득 가은은 기억이 떠오르고 문경은 그것이 그가 출가를 결심한 이유임을 알게 됩니다.
영화 ’문경‘은 아끼는 후배를 잃은 여인과 수행을 위해 만행을 떠난 비구니가 모험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신동일 감독은 길에서 만난 우정과 인연을 얘기합니다. 문경을 홍보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문경, 초월, 가은, 그리고 랑이까지… 모두 각자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니거나 지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순간 매개체가 된 것은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입니다. (길순으로 등장한 강아지는 영화 ‘핸섬가이즈’에서 봉구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인정받은 친구예요. 심장폭행 그 자체.)
초월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라는 사실이 불쾌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인턴이나 계약직들은 짧은 기간으로 계약되고 그때마다 계약서를 쓰고 다시 갱신을 반복합니다.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못할지는 윗선의 운명에 달렸죠. 문경은 가족을 잃었습니다. 슬픔을 감당할 시간에 일에 쫓겨야 했고 번아웃이 생기는 게 당연하죠. 할머니와 은둔생활을 선택한 랑이는 사회초년생으로 잘해보려다가 반대가 되었죠. 누군가의 무지함이 캐릭커처의 특기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특히 가은은 특정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아픔을 얘기합니다. 가은이 겪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1999년 인천 논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입니다. 담뱃불의 부주의로 일어난 화재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있었죠. 신동일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중 이태원 참사소식을 접했고 이태원이나 세월호 참사를 녹이는 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희생자가 많은 이유가 비상탈출구를 잠가놨고 돈 안 내고 대피하는 손님들(당시 미성년자가 많았다고 해요.) 때문에 문을 걸어잠구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대사에도 나오고 나무위키에도 있는 얘기죠. 신동일 감독은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가 아닌 어른의 부주의가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을 소환했던 것이죠.
번뇌를 벗어나고 치유가 저절로 된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떠난 길에서 마주치는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치유라면 치유겠죠.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순간 즉각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상처가 아물지 않을까 싶어요.
20대 여성 계나의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지만 융통성 없다는 얘기에 원리원칙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날리죠. 하지만 자신은 어느덧 맹수에게 잡혀 먹힐 톰슨가젤인지도. 시베리아 한기가 집안을 뚫고 와도 재건축에서 버티면 좋은 아파트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가족들. 좋은 평수로 가려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돈을 달라는 말을 그렇게 하더군요. 오랜 남친으로 지낸 지명은 이 사람이 내편인지 네편인지 모르겠습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이 친구와도 의견충돌이 생기고 예비 시부모와의 만남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수많은 짐들을 내려놓고 뉴질랜드로 향했고 망나니 유학생 재인과도 친구가 되죠. 참고 기다리면 적절한 보상이 올 것이라는 부모님 얘기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야 한다는 뉴질랜드 친구… 누구 말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 계나와 그들의 친구들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행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패배자가 아닌 그저 이 환경에 적응할 수 없을 뿐이죠. 헬조선이란 단어가 왜 생겨났을까 다시 상기시켜 봅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변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혼자만 느낀 지진은 결국 다른 의미의 지진으로 인해 한가정이 파탄 나고 어디에도 쓸대가 없던 청년은 경쟁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밥 한 번 먹자‘는 정말 빈말이 되었고, 영혼에게 대접하는 식사조차 너무 허접해 미안할 지경입니다. 행복전도사도 살 수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단순히 이 나라에서 참고 희생하는 것이 옮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추위에 떨면서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야겠어.”
파블로는 스키를 신고 난로를 짊어진 채 길을 떠났어요.
(중략)
마침내 파블로는 꿈에 그리던 곳을 찾았어요.
(동화 ‘추위를 싫어한 펭귄‘ 중에서)
펭귄 파블로가 그저 돌연변이라고만 생각하시진 않으시겠죠? 계나는 자신을 펭귄 파블로로 대입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기 힘들다는 것. 한편으로는 파블로는 재인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처음에는 자유로운 영혼 같았지만 어떻게 보면 삶을 위해 끝없이 도전하죠. 명품 편집샵에서 계나와 같이 일한 뉴질랜드 친구는 한발 더 나아가죠. 물론 좀 무모한 도전에 살짝 피해를 입었지만 단순히 기다리면 떡고물이 나올 것이라는 부모님의 생각과는 정반대죠.
장강명 씨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얼마 전 ‘댓글부대’가 먼저 영화화되면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영상을 맛나게 잘 요리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는 장건재 감독의 작품인데요, 접근성은 ‘댓글부대’가 어둡고 사회문제를 블랙코미디로 다루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밝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민자 가족 이야기나 원작에 없는 경윤 캐릭터의 등장은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내몰려지는 삶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죠.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이렇게 한국인 특히 한국여성의 삶을 진지하게 다룬 영화를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고아성 씨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볼 수 있죠. 어떻게 이 나라를 배신하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졌건, 가지지 못했던 간에 이곳에 희망이 없다면 떠나고 싶은 건 당연한 것입니다. 직설적인 제목에 기겁하시겠지만 이게 현실이잖아요.
출근길에 비닐봉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펄럭이다 못해 하늘을 날고 있고 새보다도 더 높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문득 저 PVC 쪼가리도 자유롭게 날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왜 자유롭지 못한가를 묻게 됩니다. 황당하게 무생물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죠.
잠시나마 일상탈출을 해보았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슬프기만 합니다.
‘반복되는 하루에 시작되는 이 노래, 힘내야지.’란 유행가 가사처럼 파이팅이 되는 하루를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