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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Dec 11. 2023

엄마

다정한 아이②

제주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70대 우리 엄마. 자식 넷을 키우며 시어머니를 40년 동안 모신 우리 엄마.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주일에 한 번씩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밭일을 하며 종일 바쁘게 지내는 우리 엄마.     


해녀 출신인 엄마는 20대 때 아빠와 결혼해 억척스럽게 자식 넷을 키웠다. 세 딸은 서울에 유학 보냈다. 내 삶에서 엄마와 함께 지낸 시간은 반도 되지 않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와 제주시에 나와 살면서부터 엄마와 따로 지냈다. 엄마가 제주시에 왔다 갔다 하셨지만 어릴 때처럼 같이 사는 건 아니었다. 이후 난 스무 살 때 서울에 올라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난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게 익숙하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일하고,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면서 엄마를 잘 챙겨드리진 못했다. 엄마는 절대 자식한테 기대는 스타일도 아니셔서 자식이 마음 쓸 만한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다. 아빠도 마찬가지셨다. 

  

주변 사람들이 ‘너네 엄마아빠 같은 사람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자식들이 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무한한 사랑을 주셨다. 이걸 내가 결혼해서야(내 나이 서른아홉에)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아빠야 말로 나를 온마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하셨구나. 자식들이 먼 길 오느라 힘들까 봐 제주도에 오라고 하지 않는 분들이다. 내가 임신한 이후로는 더 그렇다.    

 

임신하고 나니 유난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는 항상 내게 "조심해라", "스트레스 받지 말아아", "편하게 누워 있어라"며 임신한 나를 최우선적으로 위한다. 엄마가 해줬던 음식도 자주 생각난다. 제주도 갈 때마다 해주셨던 닭백숙, 전복죽, 감자된장찌개, 돼지고기 김치찌개... 울엄마만의 맛이 담긴 음식이 떠오른다. 


첫 번째 임신도 이렇게 힘든데, 의료시설도 변변치 않았던 시골에서 어떻게 넷이나 배 속에 품고, 밭일을 하며 우릴 키워냈을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매길 수 없는 사랑이 느껴진다. 임신하고 자주 되묻게 된다. 엄마가 내게 주신 사랑을 나도 내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엄마아빠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쉬움만 남는다. 결혼 전에 왜 그렇게 툴툴거렸을까. 딸이 편한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셨던 말들이 귓가에 맴돈다. 매일 보고 싶어도 바로 갈 수 없는 거리. 요즘 그 거리가 더 멀게만 느껴지고 가까이 가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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