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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16. 2023

내 나이가 어때서?

삶, 그리고 문화①

유튜브 '살롱드립' 엄정화 편 화면 캡처

최근 재밌게 본 드라마 중 하나가 JTBC ‘닥터 차정숙’이다. 20년이 넘도록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주부 차정숙(엄정화)이 자신을 위한 삶을 찾는 과정을 보여줘 시청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배우 엄정화의 저력을 볼 수 있는 드라마여서 반가웠다.     


문화부 기자로 일할 때 엄정화를 인터뷰한 적 있다. 영화 ‘오케이 마담’ 홍보차 처음 만났었는데, 어릴 때 TV로만 봤던 대스타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신기했다. 인터뷰를 통해 잠시 마주한 엄정화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을 예쁘게 한다’는 이었다. 질문마다 경청하며 진솔한 답변을 내놓았고, 말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선함이 묻어있었다.     


영화에서 엄정화는 액션에 도전했고 결과물은 매끄럽게 화면에 담겼다. 가수, 배우를 오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며 활약하는 그에게 ‘나이’가 언급됐다. ‘50대’라는 나이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것이다. 엄정화는 싱긋 웃으며 이런 답을 들려줬다.     


“나이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나이 때문에 망설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은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전 지치지 않아요!”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꽤 중요하다.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거나, 빠른 년생을 따지기도 한다. 여전히 나이가 기대하는 역할은 존재한다. 서른이 넘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할 것 같고, 서른다섯(노산의 기준) 전에 애를 낳아야 하고, 마흔이 되면 집을 장만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지방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결혼이 늦어지자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척, 동네 사람들 모두 내게 “결혼 언제 하냐”, “결혼이 이렇게 늦어지면 애는 어떡하냐”, “불효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다행히(?) 마흔 전에 결혼했지만, 정말 마흔이 넘어서 결혼하면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나이’에 잣대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2005년 방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김선아)는 서른 살이라는 이유로 ‘노처녀’로 구박받는다. “여자 나이 서른에 이런 조건으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굴욕적인 말도 들었다.      


18년이 지난 2023년엔 그 기준이 낮아졌지만, 주변 서른 살 동료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서른’이라는 나이에 압박을 느낀다고 했다. 결혼을 일찍 해야만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친한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35살 전에 꼭 결혼하고 싶어요. 노산도 걱정되고 35살은 꺾인다는 느낌이 강해요.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나이’를 부르짖는 사회에서 엄정화의 행보는 돋보인다. ‘닥터 차정숙’에서 홈런을 치고 tvN ‘댄스 가스 유랑단’에서 여전히 멋진 무대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나 역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여태까지 뭐했지?’라고 고민한다. 나이만 먹고 이뤄낸 게 없다며 타박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불쑥 들 때마다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세월을 거치면서 이해가 되고 ‘그럴 수 있다’ 싶은 거,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이를 먹는 게 두렵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삶의 자연스러운 이치인 걸. 나 자신을 믿어본다. 이전보다 넉넉해진 마음과 단단해진 심지가 쌓였다고, 내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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