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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ybrush Jul 15. 2021

프렌즈: 캐릭터의 성장

시트콤 <프렌즈>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프렌즈>는 10 시즌, 그러니까 10년이나 이어진 장수 시트콤이다. <프렌즈>의 성공 요인을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단연 여섯 명의 개성 강한 캐릭터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케미일 테다.


무려 10년을 이어가면서도 매 순간 모니카는 모니카 같고, 챈들러는 챈들러스럽고, 조이는 조이답다. 매 에피소드마다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를 맡는 캐릭터는 달라지지만, 언제나 극 중에서 자기 역할이 있고, 캐릭터를 지키면서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 말이 쉽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프렌즈의 캐릭터들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한다. 10년 동안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같고, 말도 안 되는 장난과 소동을 벌이지만 그들은 분명 이야기 속에서 성장한다.


<프렌즈>에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캐릭터를 뽑으라면 단연 레이첼이다. <프렌즈 리유니언>에서 제작자도 레이첼 캐릭터를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다고 말했는데, 이유는 초반 레이첼은 상당히 비호감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spoiled child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임감 없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레이첼은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아버지의 카드를 가위로 자르고 커피 하우스에 취직한다. 물론 그녀는 커피샵 주인인 컨터의 말대로 최악의 웨이트리스다. 그동안 일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하려는 의지가 있는 건가 의심도 든다.


그러던 그녀가 우연한 만남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패션 업계에 발을 들이고, 백화점을 거쳐 랄프 로렌에 들어가 진짜 직장인으로 변해 간다. 상사와 동료가 매번 담배를 피우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자 담배를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흡연실로 갈 정도다.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올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주체적이었던 레이첼은 로스와의 관계를 통해 안정적인 사랑도 배워간다. 그리고 나중에는 로스의 아이를 가지고, 커리어 우먼이자 싱글 맘의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저 섹시하다는 이유로 멋진 남자를 비서로 뽑는 등 여전히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상당수는 시트콤이라는 장르 특유의 과장으로 웃어넘길 장면들이다. 레이첼은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성장한다.


챈들러는 어떤가? 어린 시절 추수감사절에 부모님이 이혼해서 추수감사절을 혐오하고, 여장을 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남성성을 항상 의심하는 챈들러는 불편한 상황을 항상 농담으로 대충 넘기려 한다.


짜증을 유발하는 제니스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어떤 여자 하고도 오래 사귀지 못한다. 그러던 챈들러가 모니카와의 만남 이후 변한다. (챈들러와 모니카의 관계는 이전 글 참조) 모니카와 언제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종종 모니카와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크게 다투기도 한다. 그렇지만 챈들러는 결국 모니카 곁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6명의 캐릭터 중 결혼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캐릭터가 바로 챈들러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불안을 이겨내고,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에게도 찾아가 결혼식에도 초대한다. 결혼 후에도 그는 여전히 농담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이제는 모니카 없이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모니카가 챈들러의 성숙을 이끌어 낸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니카는 모니카 나름대로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는 살이 많이 쪘었고, 부모님에게 항상 오빠 로스와 비교당하며 완벽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결혼해서 제대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챈들러와 반대로, 모니카는 언제나 자기가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했다. 그녀는 언제나 결혼을 원했고, 또 아이를 원했다. 그녀가 챈들러와 맺어진 것 또한 그녀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로스의 결혼식에서 사람들의 악담에 상처를 입은 모니카는 그저 하룻밤 섹스를 원해 챈들러와 잠자리를 가졌고, 그 관계가 결혼까지 이어졌으니까. 모니카 역시 챈들러에 비해 특출 나게 성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챈들러가 모니카를 통해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했듯, 모니카 역시 챈들러와의 결혼을 통해 결혼 강박과 부모님 콤플렉스에서 벗어난다. 모니카는 부모님이 결혼식 비용을 대부분 써버리자 크게 낙담하고, 그동안 챈들러가 모은 돈으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하지만 챈들러가 꿈꾸는 미래를 듣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한 번의 결혼식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할 결혼임을 깨닫게 된다. 완벽한 웨딩드레스를 발견하고도 챈들러를 위해 포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시즌이 지날수록 오히려 퇴보하는 캐릭터도 있으니 로스다. 처음에 로스는 박사 학위를 가진 공룡 덕후에, 와이프가 레즈비언이라 이혼하는 안쓰러운 캐릭터였다. 그러다 첫사랑인 레이첼을 다시 만나 설레어하고, 그러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로스의 절정기는 시즌 초중반 레이첼과 연애할 때였다. 그때의 로스는 더 이상 안쓰러운 캐릭터가 아니라 생기 넘치고,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전문성을 갖춘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그러나 로스는 레이첼과 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린다. 문제는 로스가 레이첼과 헤어진 날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다.


로스의 진짜 문제는 레이첼이 패션 업계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 남자 마크를 너무 질투한 나머지, 패션 업계에서 자리 잡고자 애쓰는 레이첼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여자친구' 레이첼로만 그녀를 대했다는 것이다. 자기 일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고, 언제나 친구들에게 공룡과 화석 얘기로 지루하게 만들면서, 여자 친구의 커리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레이첼과 헤어진 이후, 세 번의 이혼까지 겪으며 로스의 찌질함을 도를 더해간다. 로스는 레이첼과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면서 시간을 끌려고 한다. 프렌즈가 찌질한 지식인을 풍자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고, 언제나 아이 앞에서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비호감의 마지노선은 지키지만 남들이 성장하는 사이, 홀로 퇴보하는 로스는 다소 안타까운 캐릭터다.


조이는 여자를 대부분 하룻밤 상대로 여기지만, 그도 레이첼을 사랑하게 되면서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피비는? 글쎄, 자살한 엄마, 자기를 버린 아빠, 길거리와 감옥 생활 등 처음부터 괴짜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 준 캐릭터라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아이일 때 너무 많은 일을 겪어 세상과 잘 어울리지는 않고, 다소 모순되지만 단단한 자기 세계를 갖춘 캐릭터. 마치 정반대로 자란 조커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녀만은 다른 세 남자와 한 번도 사랑으로 엮이지 않는다.


프렌즈는 그냥 기분 좋게 웃고 즐기는 시트콤이다. 하지만 모두가 기분 좋게 즐기면서 웃음을 주고, 중간중간 감성을 자극하기란 정말 어렵다. 캐릭터가 전부인 시트콤에서, 6명의 친구들은 그렇게 늘 한결같으면서도 조금씩 변했다. 그것이 프렌즈가 시트콤을 넘어 TV 시리즈의 클래식으로 남은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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