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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Oct 20. 2022

부지런함과 강박 사이

작년 1월,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날부터 나는 여태껏 성공해본 적 없는 도전을 했었다.

그것은 바로 매일매일 일기 쓰기.

난생처음 겪는 임신 과정을 하루하루 기록해서 나중에 그 기억이 희미해져도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패기 있게 시작한 첫날은 꽤나 정성스러운 수필 한 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일기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역시나 매일 일기를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가 밀리면 그다음 날 또 밀리고, 그렇게 밀리다 보면 어느새 일기에 담아야 할 기억이 긴가민가해지기 일쑤였다. 잠들기 전날 밤 일기를 안 썼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시험 전날 공부를 안 한 것처럼 찝찝하고 무거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려 하다가도

'아니야, 지금 아니면 이렇게 일기를 쓸 기회는 없어.' 하며 망설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 전에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난 일 년간 일기를 쓰면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부지런함과 강박.

그것은 노랫말 속 '사랑과 우정 사이'보다 더 애매한 사이인 것 같다.

나는 2021년 1월 17일 임신을 처음 알게 된 날부터 아기를 낳은 9월 17일까지 (거의) 매일매일 일기를 써서 내가 다짐한 목표를 이뤄냈지만, 그것이 과연 꾸준함의 결과인지 아니면 매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의 결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대세인 세상을 살고 있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작은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 예를 들자면 나에게 있어 소확행이란 아이가 등원하고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에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는 이 시간들이다.


성공을 위해 전력 질주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으름조차 포용해주는 이 기류가 나는 참 좋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었던 '강박'을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없을 열정을 쏟아부었다. 당시 나는 기숙사 학교에 다녔었는데 새벽 6시에 일어나 새벽 2시에 잠을 잘 때까지 십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했다. 급식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순간에도 간단한 영어 단어 메모장을 들고 가서 외웠고 수업 중 선생님이 잡담을 할 때면 미리 준비해 둔 문제집을 풀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열정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 같아서 일 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긴장한 탓에 제 실력 발휘를 못한 채 수능을 마쳤고 대입 결과까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엄마는 내 초라한 성적표를 나보다 더 아쉬워하며 강력하게 재수를 강요했지만 나는 이미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결국 나는 열정을 쏟아부은 강박의 대가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고 덤으로 지나친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인 대미지도 함께 얻었다.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자주 꿈에서 시험을 보고 늘 좋지 않은 결과로 괴로워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내 강박을 경계한다.

꿈을 이루고자 했던 내 열정과 부지런함은 나에게 만족스러운 결실은커녕 오히려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여느 90년 대생들처럼, 그동안 치러온 수많은 경쟁에 지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설렁설렁 대충 살고 싶은 이 불쌍한 내 또래들처럼 소확행을 즐기며 작고 소박하게 살기를 바라왔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걸까?'

지금껏 대충대충 잘 살아왔건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입사 5,6년 차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이 거기서 거기였다.

수능이나 취업처럼 더 이상 특별한 도전도 없는 삶에 안정감과 무료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꿈도 야망도 많았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한 달 벌어 한 달을 살아가는 평범하고 초라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래서일까? 고민 끝에 나는 내 안에 봉인해둔 '강박'들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강박.

퇴근 후엔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우는 강박.

한 달에 한 번은 서점에 들러 인문학 책을 한 번씩 사서 읽어보는 강박.

혼자서 흘려보내는 잡다한 생각들을 글로 기록해보는 강박.


마침내 뭐가 되었든 어제보단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강박.


부지런함과 강박의 애매한 경계에서 나는 '사는 대로 생각하기'에서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 스스로를 조여 맸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퇴근 후 영혼 없이 유튜브만 주야장천 보았던  때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강박 덕분에 나는 조금씩 결실을 얻다.

매일매일 나의 생각을 옮겨 담았던 일기들이 모여 생각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들이 모여 꽤 그럴듯한 글들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이곳에 글을 쓸 수 있는 나름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었다.




부지런함이 부족하면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부지런함이 넘치면 스스로를 지나치게 옭아매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당한 부지런함은 어느 정도 일까?

나는 내 딸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게으르게 살면 생각 없이 살게 되니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지런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지칠 수 있으니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이것은 아직 부지런함과 강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참 어려운 난제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몸뚱이만 어른인 애송이는 알 수 없는 심오한 난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나와 같은 어른이 되기 전에, 내 곁에 머물러있는 짧은 시간 동안 부디 내가 정답을 찾아 알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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