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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Jun 22. 2023

너의 발에 담긴 시간

사람이 느끼는 감각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각 에 시간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와이로 신혼여행 가서 사 왔던 향초가 있었다.

머스크 향이 짙었던 향초였는데 이따금 그 향을 맡고 있으면 마냥 행복했던 신혼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했다.


스무 살 즈음에 들었던 최신 가요들은 이제 고리타분한 옛날 노래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

노래에 담긴 나의 이십 대를 회상하고 싶기 때문이다.


때로는 감각을 넘어 사람 자체가 시간을 담아내기도 한다.

어릴 적 친구들, 그들은 내 추억을 담은 '모든 감각의 결정체'이다. 아마 결혼식날 신부의 친구가 편지를 읽어주다 이따금 눈물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친구를 향한 그리움보다는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서일 것 같다.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아쉽고 애틋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이랄까.


그리고 최근 들어 회사에 복직하고 한창 바빠서 줄야근을 했을 때.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와 먼저 잠이 든 아이 옆에 누우면 나는 아쉽고 미안한 마음에 아이의 발을 만지작거리다 잠을 잤다.

그때 내 손 가득 느껴졌던 따뜻하고 작고 사랑스러웠던 발. 그 촉감들은 힘들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았고, 지금도 아이의 발을 만지면 괜스레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몰려온다.




우리 딸의 작은 발에는 엄마로서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 안쓰러움이 담겨 이따금 나를 콕콕 찌른다.


밤에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을 딸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일에 치여 힘들어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죄책감이 들곤 한다.


언젠가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다면 다시 그 작고 예쁜 발을 열심히 만져야겠다.

작은 발에 새겨진 미안함과 힘들었던 시간들 위에 예쁜 추억을 새로 포개놓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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