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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Mar 05. 2023

사랑에 조건이 생길 때가 온다면

아이를 낳고나서부터 가족들에게 참 서운했던 적이 많았다.

에피소드야 조금씩 다르지만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난 오로지 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사는 것 같은 느낌.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은 느낌.'


엄마로서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요받다 보니 엄마가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지금의 내 아이처럼 엄마의 존재를 한없이 작게 만들 만큼 사랑받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고,

내 아이도 언젠간 지금의 나처럼 단지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 것이다.




우리 아기는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온전한 사랑만을 받아오고 있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랑.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그런 사랑.


슬프지만 그런 사랑을 언제까지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고 싶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바라는 게 더 많아지고 욕심이 생긴다면, 이 아이는 나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어른이 되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는 더욱더 힘들어지겠지. 내가 가진 능력이 곧 사랑과 인정의 척도가 될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도 나에게 내가 살아 있는 것 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엄마 아빠를 떠나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더 나아가 직장 동료들에게, 상사에게, 배우자에게, 또 그 배우자의 가족들에게...

수많은 사람들로 범위를 넓혀갈수록 사랑에는 점점 더 조건이 붙는다.


내가 그저 '있는 것' 만으로도 받을 수 있었던 사랑은 점점 더 받기 어려워지고 저 멀리 무지개처럼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슬픈 현실이 냉정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내 딸에게도 닥칠 미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고 싶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엄마가 줄 수 있는 가장 무조건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주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내 딸이 시간이 흘러 조건 없는 사랑과 인정을 받기 어려운 나이가 되더라도, 나로 인해 단단해진 마음을 갖고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만 두 살이 채 안된 우리 아기.

어른이 된다면 기억도 희미해질 만큼 어린 나이지만 지금 엄마 아빠가 쏟아주는 이 사랑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기억해 준다면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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