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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Mar 03. 2023

물을 쏟은 네 덕분에 나를 만난다

오늘도 덕순이는 서투른 손짓으로 사고를 쳤다.

물이 담긴 컵을 제멋대로 들어서 물을 쏟아버린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나는 설거지를 하다 뒤를 돌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곧이어 후회했다. 나긋나긋한 엄마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다르게 날카로워지자 아이가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바둑알처럼 까맣고 예쁜 눈으로 나를 휘둥그레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는 놀람과 함께 엄마한테 혼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함께 녹아있었다.

나는 아이의 그 모습에서 어릴 적 나를 만났다.




나는 어릴 적 물을 참 잘 쏟았다.

아마 지금의 덕순이처럼 손이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덕순이와 달리 나는 물을 쏟을 때마다 크게 혼이 났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억울함과 무서움, 불안함 등의 감정은 눈에 선히 보이는 듯 생생하다.


지금 내 앞에는 물을 쏟아버린 삼십 년 전의 내가 서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는 어린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런 나를 오히려 더 꼭 안아주며 다독였다.


'우리 덕순이, 또 물을 쏟았어! 그래도 괜찮아.

다음번엔 손잡이부터 잡는 거야. 알았지?

알았으면 엄마 안아줘.'


사랑을 가득 담은 뽀뽀까지 완벽한 마무리를 보여주자 아이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겼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이따금씩 어린 나를 만난다.


어렸던 내가 힘들어했던 것, 엄마 아빠에게 원했던 것, 원하지 않았던 것, 말하고 싶었던 것들.

그 복잡한 감정이 섞이고 섞여 지금의 내 아이에게 투영된다.

어릴 적 겪었던 내 결핍은 이렇게 다시 만난 나를 안아주고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다시 채워진다.


힘들다면 한 없이 힘든 육아지만

내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


너를 기르면서 나는 나를 만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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