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순 Dec 24. 2023

수능, 그 순응의 척도

어제도 그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스크린도어에 반가운 시가 적혀있었다.

이름도 뭔가 시처럼 아름다운 시인

김소월의 '먼 후일'


학창 시절, 나는 이 시를 참 좋아했었다. 시처럼 애달픈 사랑을 한 적은 없었어도 시에 담긴 그 애절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영역이 참 싫었다. 이 아름다운 시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강요하는 그런 학문이 너무 싫었다.

문학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항상 시대상을 끌어 들어와 주제를 만드는 억측이 맘에 안 들었다. 이 아름다운 시마저 일제강점기의 무슨 독립의 염원으로 바꿔버렸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를 했다.

족집게 강사가 집어주는 문학 작품별 시대상을 외우고 또 외웠다.

오직 수능을 잘 봐서 일류 대학에 합격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감수성이 풍부했던 문학소녀는 이시절 잠시 봉인하고 기계처럼 살았다.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지만.)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 뒤,

잊고 살았던 김소월의 시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지하철을 내리고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

아주 짧은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고이 접어둔 작가의 꿈이 아른거려 목구멍이 울컥거리고 간지러웠다.


'노력한 만큼 대가도 없는 세상에.

뭘 얻으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수능은 내게 '순응의 척도'였다.


이토록 불공평한 세상에,

이토록 불합리한 세상에,

얼마나 순응하고 따르는지를  심판받는 그런 시험이었다.


그리고 난 아쉽게도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날 배가 아팠어서 망했어.'

'점수는 그럭저럭이었는데 원서를 잘못 썼어.'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늘어놓는 이런  변명거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에도 지금도 '순응'에 실패한 듯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것밖에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휩싸여 '원래 불공평한 세상'에 쉽게 순응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 김소월의 시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의 시로 억지 해석하는 것만큼이나 내겐 힘든 일일테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순응' 시험에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발에 담긴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