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순 Mar 04. 2024

건강한 결핍에 관하여


주말 나들이로 아이와 놀이동산을 놀러 간 날,

유난히 아이가 힘들었다.

미운 네 살에 들어서서 그런 걸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곤 했는데 그날이 유독 심했다. 제 몸집보다 큰 풍선을 떼를 써서 사주고 말았는데 그마저도 풍선이 끈에 매달려 통통 날아갈 듯 말 듯 약을 올릴 때마다 풍선을 돌려달라며 악을 쓰며 화를 냈다. 결국 아빠의 발 빠른 조치로 풍선의 끈을 유모차 손잡이에 칭칭 감아 애 눈앞에 풍선을 놓고 나서야 불 같던 역정이 멈췄다.


이 상황에서 현명한 부모는 어떻게 했을까? 사실 글로는 배웠다. 아이가 밖에서 무지성으로 떼를 쓸 때에는 당장 데리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가 더 화를 내고 울고불고해도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서 잘못된 행동의 대가를 가르쳐야 한다. 이게 참, 차라리 모르면 다행일 텐데 정답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니 더 답답할 뿐이다.


글로만 배운 육아는 실천이 어렵다. 외출에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아이의 더한 역정과 화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얼른 모면하고 싶어서 나는 또 편한 방법을 택한다. 아이가 원하는걸 눈감고 들어주는 것. 그리고 뒤따르는 후회는 내 몫이다.




아이가 귀한 요즘 세상은 나 어릴 적과는 사뭇 다르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옛날의 육아는 여백의 미가 나른히 보이는 산수화 같다면, 요즘 육아는 부모가 빈 틈이 보이지 않게 빼곡히 채워주는 유화 같다.

아이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수많은 육아용품이 쏟아져 나오고 그 정보의 호수 속에서 우리 엄마 아빠들은 지갑을 닫을 새가 없다.


'결핍을 싫어하는 육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길, 결핍을 극도로 거부하는 부모의 육아 방식은 잘못된 것이며, 이로 인해 아이는 무엇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내려 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목표를 향한 집념과 의지는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지만 도덕성이 결여된 채로 지나치게 커지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건강한 결핍을 지향하는 육아'

부모는 아이에게 적당한 한계를 알려주어야 하고 이로 인한 안 좋은 감정들을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한다. 결핍으로 인한 아이의 불편한 감정을 본인의 감정으로 착각해서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로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결핍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지. 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육아가 어렵다.

'결핍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단 말인가.' 결핍에 익숙했던 나에게 결핍이란 늘 억울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속상했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와서 결핍은 사실 건강한 것도 있으니 잘 가르쳐야 한다니.


어렸을 적 나에게 결핍은 값비싼 장난감이나 풍성한 식사 같은 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응원과 지지, 나를 향한 믿음, 내 생각에 대한 존중, 배려 이런 것들이었다. 권위적이었던 부모 아래서 나는 늘 주눅이 들어있었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내 딸에겐 결핍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결핍은 항상 안 좋은 감정만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나만 사랑받고 못 큰 것 같은, (사실은 그럭저럭 사랑받으며 잘 컸다.) 그런 피해의식들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부족했던 것은 내가 딸에게 마지못해 사주는 대왕 풍선 같은 게 아니라, 안 좋은 감정들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방법 같은 것인데 말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엄마가 되었으니 내 딸에게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건강한 결핍이 뭔지 모르고 자란 내가 딸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로 인한 안 좋은 감정들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는 키우면 키울수록 나의 무지에 부딪히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 끝에 배운다. 그리고 또다시 부딪힌다. 그래서 나는 육아가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오늘도 반성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 그 순응의 척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