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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Feb 19. 2024

독립책방 알바 떨어진 이야기

면접 광탈러

독립책방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매니저님과의 첫 대면엔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를 탈락시키려는 것 같은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 결과를 통지해 주신다 하셨는데 바로 탈락 통지를 받았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였다. 기운이 빠졌다. 일하고 싶은 건 진심이었는데 진심만으론 통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아쉽지만 책방은 일단 고사하기로 했다. 어딘가 날 필요로 하는 데가 있겠지. 합정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심장이 너무나도 떨렸던 게 참 우스웠다.


알바 하나 탈락한 것 가지고 구구절절이냐 하겠지만, 박람회 판매, 카페, 영화관 알바를 하는 동안에도 사실 정말 일해보고 싶었던 곳은 오로지 독립 책방이었기에 그랬다. 책방은 왜 이렇게 문턱이 높은 것일까? 책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다른 곳은 척척 되던데. 내가 쉽게 살아온 거였나?


면접 떨어진 후 얼마간은 세상이 왜 이리 박한 거냐며 원망했다. 내가 노력을 안 한 탓인가,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 건가, 물어보면 알려줄 건가 하면서. 겨우 용기를 내서 면접을 보았는데, 사전 설문조사에 매우 공을 들여 답변해 제출했는데. 답변으로써 보여준 나의 첫인상은 용납되었지만 직접 보았을 땐 별로라는 것일까. 제가 많이 모자란가요?


면접 본 곳에 재방문하는 건 사실 민망해서라도 피하기 마련인데 그래도 난 다시 갔다(굳이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워낙 큐레이팅을 잘하는 책방이라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매니저님도 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샀다. 매니저님이 계산해 주셨다. 날 알아보신 눈치였지만 서로 아무 말도 없이 계산이 끝났다. 그래, 그냥 이렇게 이겨내는 거지 뭐.


뻔뻔하게 다시 책 사러 간 것은 상당히 용기가 있는 행동이었다. 민망해도 뭐 어쩌겠나. 그 책방 큐레이팅이 좋은 걸. 알바 하나 떨어뜨렸다고 내가 떨어져 나갈 줄 알았겠지? 그래서 결론은, 아직도 여전히 책은 좋다는 거다.


벌써 그날로부터 5년이나 되어 간다. 여전히 그 책방은 건사하고 열심히 운영되어 간다. 면접에서 낙방한 나도 물론 건사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내가 어떻게든 책을 출간하여 그 서점에도 진열된다면 어떨까 하는 심심한 공상도 해본다. 상상하다 말고 나는 쓰던 글을 읽고 고치고, 읽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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