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기 Jan 31. 2024

개발자가 엑셀을 못한다고?

엑셀 파일 출력하는 개발자

나는 개발자였다. 엑셀을 못하는 개발자. 엑셀 파일을 출력하는 코드를 짜던 개발자인데 무슨 엑셀을 못한다고? 중국어는 아는데 한문은 모르는, 그런 거야?


그렇다. 나는 엑셀이 어려웠고 엑셀에 무슨 기능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SUM만 알면 되는 줄…. 엑셀에도 스트링 split 기능이 있어…?


특이하게도 나는 웹 개발을 하면서 통계자료를 엑셀로 출력해 내는 코드를 짜기도 했는데 엑셀에서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다뤄본 적이 별로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옮겨간 회사에서 만나게 된 어느 사수님에 의해 나는 VLOOKUP 같은 기능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윽고 K-직장인의 엑셀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엑셀이라는 거 다양한 기능이 있었구나….


그러다 봉착하게 된 VBA. 역시 엑셀 함수로는 내가 만들고 싶은 기능에 한계가 있었고 특수 문자를 걸러내는 필터링 함수나 내가 원하는 특정 문자를 합치거나 자르는 함수들을 사용하려면 엑셀에서도 코딩을 해야 했다.


물론 그냥 기본 함수들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로로 써야 하는 엑셀 함수는 가독성도 없을뿐더러, 방대한 자료라면 직접 함수를 만드는 게 편했다.


코딩이라면 익숙하니 금방 써먹을 수 있게 되어 엑셀은 다 뗐거니 싶었다. 이제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벼러별 기능들을 만들고 놀았으니까. 나 엑셀 이제 잘해!


그런데 엊그제 엑셀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느 특이점에 도달했다. 그 연장선상에는 데이터 분석이라는 최종 목표가 자리했던 것이다. 사뭇 다른 지점이었다. 원하는 데이터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힘이 진짜 중요한 부분이었던 거다.


개발자 시절도 똑같다. 어떤 결과값이 필요한지 알고, 그 결과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모르고 개발을 하다간 깡통 개발자가 된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문제는 단순히 알고 모르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어느 깊이까지 바라보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한문을 아냐 모르냐를 묻는 이런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한문으로 무엇을 말하고 쓸 것이냐 하는 문제였던 거다.


그런 부분에서 난, 다시 초짜로 회귀한다. 어제도 막 엑셀로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러나 아직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창출해 내는 실력은 부족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기계는 해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난 기계처럼 데이터를 출력해 낼 수는 있었지만 인간의 눈으로 읽어내는 건 미흡한 사람이었던 거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모르는 워드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