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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Aug 07. 2023

인간이 갈구한 궁극의 단맛

꿀을 통해 들여다보는 인류의 문화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꿀맛’이라고 하면 맛있는 음식의 상징과도 같다. 뿐만 아니라 ‘꿀성대’, ‘꿀잠’ 같은 말까지 나올 만큼 꿀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최고치와 자주 비유된다. 꿀이 지닌 달콤함은 세계사를 바꿔놓은 많은 일들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당연히 인류와 함께 해 온 꿀에는 다양한 종교적 함의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약성경 판관기를 보면 삼손은 사자를 죽인 후, 그 시체에 벌들이 집을 짓자 꿀을 가져가 부모님에게 드린다. 또 야곱이 이집트에 아들을 보낼 때 챙긴 예물 중에도 꿀이 포함돼 있다. 이는 고대부터 꿀이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특히 약속이 땅인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묘사된다. 그 밖에도 기독교에서 묘사되는 꿀은 계율, 유혹, 선한 말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꿀은 나무나 바위 등에서 발견된 야생꿀이었을 것이다. 동물의 사체에서 꿀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꿀벌치기 아리스타이오스의 구애를 피해 달아나다 뱀에 물려 죽고 만다. 그녀의 친구였던 님프들은 아리스타이오스의 벌들을 몰살시키고, 그는 예언자 프로페우스의 충고에 따라 네 마리의 황소와 네 마리의 암소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며칠 후 죽은 소들의 시체에서 벌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편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꿀을 바친 원숭이 이야기가 유명하다. 부처가 발우에 담긴 꿀을 먹자 기뻐하던 원숭이는 껑충껑충 뛰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는다. 후일 원숭이는 인간으로 환생해 출가했고,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시아 상좌부 불교에서는 꿀과 과일을 절에 바치는 꿀 공양의 전통이 남아 있다. 


또한 꿀은 하루 두 끼만 먹는 승려들이 언제든 섭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음식 중 하나다. 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먹은 우유죽과 꿀, 이후 첫 번째 식사인 보리죽과 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아울러 꿀벌은 꽃의 색과 향을 해치지 않고 부지런히 식량을 모으므로 생명을 존중하는 자비로운 존재이면서 근면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의 힌두교 역시 경전 리그베다에서 꿀을 영약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꿀벌의 생활상을 두고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을 알려준다”며 교훈을 주는 동물로 평가한다. 벌이 생산하는 꿀은 신이 허락한 ‘할랄’에 해당하며, 특히 라마단 단식 후 식사를 재개할 때 포도당으로 이뤄진 꿀은 기력을 회복하는 데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그밖에 고대 이집트 신화나 북유럽 신화에서도 꿀의 등장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꿀은 천연 항생제이면서 썩지 않는 식품으로도 알려졌다. 수천 년 전 피라미드 안에 보관된 꿀에 열을 가해 먹을 수 있었다고도 한다. 당도가 높은 꿀은 삼투현상으로 수분을 밀어내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또 꽃가루 속 화분의 부패 방지 효소도 변질을 막아준다. 


인류가 술을 빚게 된 계기가 된 식품도 바로 벌꿀이다. 돌이나 나무 틈에 고여 있던 꿀에 빗물이 섞이면 자연 발효가 되는데, 이와 비슷하게 당도가 높은 과일에서도 자연스럽게 술이 만들어지곤 했다. 동물들이 발효된 액체를 마시고 몽롱해지는 모습을 보고 인간은 호기심이 들었을 것이다. 꿀로 빚은 술, 미드는 북유럽의 신혼부부들이 결혼 후 한 달 동안 마시는 전통이 있고 여기에서 허니문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 


꿀은 꽃에서 채취하므로 식물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비건들은 꿀을 먹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당과 포도당 성분의 꿀은 꿀벌의 소화액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꿀은 각종 민간 치료제로도 오랫동안 사용돼 온 식품이다. 당분을 보충해야 할 때는 물론이고 구내염 같은 염증 치료에도 쓰였고, 미백과 보습 효과가 있는 값비싼 화장품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부잣집 마님들은 참기름을 클렌저로, 꿀을 에센스로 썼다고 한다. 


꿀을 약처럼 섭취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1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꿀 속에 일부 포함된 보툴리누스 균 때문인데 면역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아기가 섭취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며 실제로 사망한 사례까지 있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왕실의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이유가 혹시 몸에 좋으라고 먹인 꿀 때문은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 


꿀벌이 만들어내는 꿀과 밀랍은 인류에게 요긴한 자원으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꿀벌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식물의 수분이다. 환경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꿀벌의 실종은 공존이라는 가치를 잃어가는 인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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