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채만식과 일제강점기 음식문화
넷플릭스 예능 ‘미친맛집’에서는 가수 성시경과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각각 한국, 일본의 맛집을 선보인다. 그중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도 등장한 야끼니쿠 맛집은 왠지 친숙한 모습이다. 불판에 고기를 직접 굽고, 마늘 고추를 곁들인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 영락없이 한국식 고기집인 것.
실제로 일본의 고기집 대부분은 한국식으로,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곳이 많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육식은 일본인에게 낯선 것이다 보니, 식습관이 비슷하고 고기에 진심이었던 한국의 방식을 참고했을 듯 하다. 1900년대 일본의 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기자였던 우스다 잔운은 커다란 소머리를 내건 국밥집과 우족을 삶는 모습 등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핍박과 빈곤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에게 고기는 작은 사치이자 위안이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고, 선술집 술꾼들은 일본인들이 먹지 않는 곱창이나 염통 같은 내장고기에 독한 술로 시름을 달랬다. 이 시절을 살아간 문인들 중 특히 고기와 진심이었던 인물로는 소설가 채만식이 있다.
소설 ‘태평천하’에서 윤직원 영감의 어린 첩은 기생 동료들과 탕수육, 우동을 시켜 먹는다. 그녀의 환심을 사는 데 안달이 난 영감이지만 칼로 고기를 썰어 먹는 ‘난찌(런치)’만큼은 질색한다. 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미츠코시 백화점은 사치스러운 데이트를 즐기려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였다고 한다. 서양식 난찌를 먹는 것은 여성들의 로망이자 데이트 필수 코스였다.
생전에 채만식은 어려운 살림에 쪼들리면서도 밥상에 꼭 고기반찬을 올렸다고 한다. 한번은 지인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네는 채(菜)만식(食)이 아니라 육(肉)만식(食)”이라고 농담을 한 적도 있다. 그의 작품에서 음식 묘사가 상세하게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본인의 식탐이 반영된 듯 하다. 특히 그는 고기 산적을 가지고 한편의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직장을 잃고 굶주리던 화자는 아내를 전당포에 보내 쌀을 사오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사온 것은 작은 꾸러미에 든 쇠고기였다. 전당포에서 오십전을 받고 돌아오다 한 선술집 앞을 지나게 됐고, 산적 굽는 냄새에 이끌려 쌀 대신 고기에 돈을 써버린 것. 망연자실한 아내는 다시 바꿔 오겠다고 하지만 화자는 태연하게 산적을 구워 먹자고 한다. 부부는 양념도 변변치 못한 산적을 맛있게 먹으며 “내일은 또 어떻게 헐 셈 치구”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이 단편에는 그 시절 선술집 풍경이 직접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됐다. 아궁이에는 두 개의 커다란 솥이 걸려 있고, 선반 위 도마에는 간장, 초장, 고추장 등 양념 주발이 놓였다. 술잔을 놓는 목로 맞은편에는 안주 굽는 화로가 있다. 뜨끈하고 진한 고기국물과 백탄불에 지글지글 구운 산적은 술맛을 돋우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고기 굽는 냄새는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마저 정신을 놓을 만큼 유혹적인 존재였다.
채만식의 소설들은 일제강점기 음식문화를 탐색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여자의 쭉 뻗은 다리를 보며 길쭉한 치킨가스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양식이 한반도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대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태평천하’ 속 중국집 우동은 한국에 들어온 중국요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중국집 양대 강자는 짜장면과 짬뽕이 아니라 짜장면과 우동이었다. 중국우동의 전신은 걸쭉한 울면이었다고 알려졌다.
녹말을 넣은 울면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렸고, 육수를 맑게 해달라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중화요리에 일본식 이름인 우동이 붙게 된 것은 맑은 육수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중국우동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 메뉴였으나 현재는 짬뽕에 밀려 마이너한 존재가 됐다. 새빨갛고 매운 짬뽕은 단숨에 한국인의 취향을 저격했고, 단맛이 강해진 짜장면과 함께 중국집의 투톱으로 올라섰다.
탕수육의 원조는 중국 동북 지역의 탕추리지(糖酢里脊)로, 구한말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팔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탕수육과 비교하면 단맛 대신 신맛이 두드러졌고, 채소류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의 청요리는 어지간한 부잣집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만큼 고가였다. 춘심이 기생들에게 탕수육을 대접한 것은 윤직원 영감의 재력으로 누리는 호사를 자랑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원고지를 넉넉하게 갖는게 소원이었을만큼 빈곤한 와중에도 채만식은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태평천하’ 같은 풍자적 소설들을 써냈다. 하지만 그도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 소설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강연을 다녔다. 다만 끝까지 변명에 급급했던 김동인, 이광수 등과는 달리 그는 광복 이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소설을 통해 친일 행적을 반성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모습을 보면, 채만식의 경우 최소한의 양심은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소설 속에 담아낸 고학력 백수나 시대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 등 인간군상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기시감과 씁쓸함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