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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Jul 26. 2020

말을 대체하는 밈

가설 

어떤 아이디어는 말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지나 희미한 짐작처럼 떠오르는 생각도 있는 법이다. 이걸 텍스트로 옮겨 적다보면 그 중 일부는 소실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말을 고르고 골라도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에 어쩐지 부족하다는 갑갑함에 사로잡힐 때가.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에게 “뭔지 알지?”, “무슨 느낌인지 알지?”라고 재차 확인한다.


불완전한 언어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도구가 있다, 밈이다. 밈은 그리스어 모방(mimeme)과 영어 유전자(gene)를 합한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저술한 리처드 도킨슨 옹이 고안한 개념인데, 최근엔 그 의미가 확장돼서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이미지, 짧은 영상도 밈이라고 쳐주는 듯하다. 비의 '1일 1깡‘이나 김영철의 '4딸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밈은 의사소통에 있어 편리한 도구다. 직관적인 이미지는 특정 메시지를 넘어서 어떤 뉘앙스, 맥락을 전달하는 데 효율적이다. 우리는 단어를 골라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밈은 또 짐짓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가볍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담이 덜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구글에 ‘주식짤’, ‘비트코인짤’을 검색해보길 바란다. ‘투자 실패’라는 비극적인 상황이 어떻게 희극처럼 연출될 수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런 상상도 해봤다. 어쩌면 근 미래시대의 사람들은 오프라인 대화에서 마치 이모티콘을 쓰는 것처럼 밈을 사용하지 않을까? 예컨대 거드름을 피우는 친구에게 ‘태왕사신기_이게_뭔 개소리야.MP4’를 홀로그램으로 쏘아준다던지, 가슴속에 고이 품고 있던 사직서를 빼어들 때, ‘이누야샤_가영이_퇴사짤.MP4’가 맥시멈 볼륨으로 울려퍼진다든지 하는.


드라마 이어즈앤이어즈의 한 장면. 오프라인에서 홀로그램 형태로 노출된 이모티콘.



하지만 그런 미래는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밈이 우리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을 대체했다는 점에서 나를 정의할 말들 또한 밈에게 얼마간 자리를 내줬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과거 싸이월드 시대 땐 다소 투박하더라도 저마다 감성적인 표현을 주고 받는 게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근래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지한 표현물을 유독 못 견뎌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오글거린다’ ‘진지충’이라는 비하의 표현은 이런 세태의 전조처럼 읽힌다. 어떤 주제든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밈 앞에서 진지한 이야기들은 어쩐지 “힙스럽지” 못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제목의 책을 폈던 바 있는데, 사실 영화가 세상이 되기엔 런닝타임이 너무 길지 않나 싶다. 세상은 영화가 아니라 10초짜리 분량의 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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