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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an 22. 2023

그렇게, 특별한 2022년

조금 뒤늦은 2022년 회고 

쿵!


짐짝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새벽녘을 울렸다. 후다닥,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급하게 아버지 방으로 뛰어간다. 역시나 침대 위에서 주무시던 아버지가 바닥에 떨어지셨다. 또래에 비해 건장하시던 몸은 어느새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어진 육신이 되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질 때 얼굴이 먼저 닿은 탓인지 코 양쪽으로 피가 흐른다. 덕분에 침대 다리와 서랍장, 벽에 검붉은 핏자국이 흩어져 있었다. 


동이 트지도 않을 시간에 아버지가 드실 음식이 오늘도 집 앞 복도에 도착했다. 야채죽, 팥죽, 호박죽, 곰탕, 소고기뭇국, 카스텔라…주로 한 입에 쉽게 목 넘김 할 수 있는 메뉴들, 그리고 나와 동생의 열량을 보충해 줄 몇몇 군것질거리들을 박스에서 식탁 위로 쏟아낸다. 아버지가 그중에서 가장 즐겨드시던 팥죽을 뜯어 물이 팔팔 끓는 냄비에 데친 후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자기가 먹어보겠다는 고집에 체념하여 그 사이 밀린 설거지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식탁 위며 바닥이며 아버지의 무릎 위며 여기저기 팥죽이 너부러져있다. 퀭한 눈, 너무나 미안해서 죽겠다는 눈,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무력감의 눈, 동시에 내 눈치를 살피는 아버지의 그 눈을 바라보며 나는 애처롭기보다는 분노했다. 바닥에 흩어진 팥죽이 새벽녘 아버지의 핏자국 같았다. 


파란색 목욕 의자를 샤워 부스 안에 펼쳐놓고 아버지의 몸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탄력을 잃은 살 곳곳에 샤워기로 물을 뿌린 후 타월에 비누를 묻혀 쓱쓱 문지른다. 날렵하다 못해 뾰족해진 턱주가리를, 얄팍한 팔과 옆구리 사이의 겨드랑이를 지나 피부색이 어두워진 사타구니를 문지른다. 아버지의 거칠한 엉덩이 왼쪽에 아직도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쥐젖만이 변함없이 그대로다. 샤워를 마친 아버지의 몸을 마른 수건으로 꼼꼼하게 닦고 거의 마네킹을 들다시피하여 거실 소파로 옮긴다. 일어선 상태로 옷을 입으면 다리에 힘이 없는 아버지가 넘어져 뼈가 부러질 수도 있기에 반드시 앉거나 누운 상태로 옷을 입혀드려야 한다. 옷을 입혀드리고 다시 부축하여 침대로 옮겨드린 후 TV를 틀어드리니, 그제서야 어렵게 입을 떼 한 말씀하신다. 


“.. 고생했다...”






1. 2022년의 시작 


2022년 새해는 참 잔인하게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세포가 아버지의 기억을, 그의 존재감을 점점 더 빠르게 갉아먹고 있었다. 회사의 배려와 가족 돌봄 휴가 덕택에 다행히 나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몇 달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모든 일상을 덮어가며 난 점점 강퍅해졌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때론 가라앉고 무너졌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실은 알 필요가 없었던 여러 가지를 알게 되기도 했다. 암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 장기 요양 등급과 기준,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 의료 보조 기기 임대… 이런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싫었다.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지시는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셨고, 결국 아버지를 3월에 하늘로 보내드렸다. 아버지와의 시간은 내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경험하게도 했지만, 삶의 동기와 의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나는 대학원 박사 과정과 함께 3번째 책 출간을 준비했다. 요양원에 면회를 갔을 때 박사 과정 합격 소식을 알려드렸는데, ‘우리 아들이 박사’라며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시던 나의 아버지셨다. 



2. 2022년의 활동과 성취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회사에 복직을 한 후 조금씩 나와 가족들의 일상도 자리를 찾아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캠퍼스는 늘 설레지만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는 여정은 항상 고통스럽다. 첫 학기에 매주 4개의 영어 논문을 읽을 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꽤 불편하고 조바심이 났다. 학술적 글쓰기는 여전히 내게 어렵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먹함이 사라졌다. 2학기를 마쳤을 뿐이지만 ‘조직심리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의 여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의 인연을 더 소중히 다루어야겠다. 


제정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딴 생각을 하기가 싫어 맡게 된 몇몇 사내 조직개발 워크숍은,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아 바닥에 굴러다니던 나의 ‘자기효능감’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메드트로닉은 ‘앞으로 내가 직장에서 이와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더십의 서포트와 자율성, 충분한 위임과 역할, 학습의 토양이 마련된 성숙한 구성원들, 주도적인 시간 관리와 통제력, 훌륭한 복리후생으로 내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높았던 일터였다. 나의 미션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위해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메드트로닉 안에서의 경험은 나의 커리어에서 큰 의미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6월에는 조금 뒤늦게 3번째 책인 ‘딜레마의 편지’ 출간 행사를 할 수 있었다. 사당동의 동네 책방에서 소수 인원을 현장에서 만나면서 동시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활용했다. 딜레마의 편지 컨셉에 맞게 나만의 기획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 책 이야기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고민과 시도를 나누었다는 점, 무엇보다 혜수, 수지, 그리고 충식님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만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딜레마의 편지’를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능률협회에서의 인터널브랜딩 공개 과정, MYSC와 협업한 스타트업 멘토링과 자문, 모 외국계 기업의 핵심인재 리더십 교육, 그 외 몇몇 좋은 기업에서 특강 & 북토크 등으로 때마다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감사한 한 해였다. 교육은 누군가를 당장 성장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회라고 생각을 하는데, 교육 장면 안에서 만난 분들과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질문이 멈추면 성장이 멈추고 질문이 확장되면 비로소 성장이 시작된다. 올해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질문들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 어떻게 기록될지도 기대된다. 


당찬 포부와 미션을 가지고 10월에 이퀄썸에 합류했고, 바로 얼마 전 석 달 만에 이퀄썸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 시간 동안 IR 자료를 만들고, 몇몇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고, 공개 웨비나를 개최하고, 스무개 기업의 담당자들과 커피챗을 진행하는 등 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모 회사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담당자나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과 피드백도 받았는데 마음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나는 프로젝트에서 다루지 못한 ‘빠져있는 퍼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후 Follow up 이 필요했지만 내가 그 여정에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쨌든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계약 관계를 토대로 특정한 범주 안에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제출하면 나의 쓸모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후 조직 안에서 자신들의 맥락과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몫. 외부 파트너로서의 나는 그 과정을 리드하거나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조직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우리 만의 맥락과 경험을 만드는 것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조직 안에서의 활동이 실은 내게 더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던 모양이다. 교육 장면에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집단이 함께 꿈꾸는 목적과 이상을 위해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맥락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 내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3. 다시 


난 다시 도전의 길 앞에 서 있다. 


세상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은 회사명과 같은 소속일 수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관계일 수도, 

어딘가에 기여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는 역할일 수도. 


올해 나는 세상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삶은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삶을 더 모르겠다는 어른들의 고백이 이제 조금 이해된다. 

그것이 삶의 불확실성과 나의 연약함을 겸허히 수용하는 태도이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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