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의 저울질

by 가치지기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먼저 파악하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말씨와 태도, 표정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피며 속마음을 가늠하고, 그 판단의 저울질로 나를 보호하고 상대를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민감하게 형성된 감각으로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의 크기를 헤아리려 했다면, 사람을 위로하고 안식하게 해주는 나무 그루터기처럼 편안히 쉬었다 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그 삶을 잠시 돌아보게 된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 퇴사한 직원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저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추석에 찾아오고 싶었지만, 생일을 맞아 회사에 찾아와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습니다.”


말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고,

분에 넘쳐 극구 사양했지만, 오늘 정말 그 직원이 직접 찾아와 선물과 케이크를 놓고 갔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얼굴은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화사하게 윤기가 나던 사람이,

함께 일할 때 점점 지쳐가던 모습, 무표정하고 빛없던 얼굴로 변해가던 모습이 떠올라 순간 울컥하였습니다.


이제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향해 갈 용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꼭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그 친구가 퇴사하던 날,

와인 선물을 고심하며 준비해 전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바쁜 일들에 치여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고,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선물로 마음을 대신하고 싶었었습니다.


오늘 그 직원은 말했습니다.

“그때 와인이 너무 고마워, 아직도 마시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나는 그 선물을 주면서,

그 친구가 퇴사하는 날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고 와인을 다 마셨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판단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자기식대로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지 다시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와 직장에서는 인간관계를 딱 필요한 만큼만, 예의와 선을 지키며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도 보호되고, 상대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다고 푸념하듯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저울질하기보다,

미안한 마음이라도 진심으로 표현하려 할 때, 그 진심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을.


물론,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감정만 앞세우고 무례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격식과 배려는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본입니다.


하지만 계산과 저울질 속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거리를 두는 삶보다는,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오늘 깊이 깨달았습니다.


인간관계는 마음을 담은 작은 행동,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 속에서 천천히 자라, 따뜻하게 꽃피웁니다.


오늘 나는 그 꽃향기를 조용히 맡아 보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결국 진심을 향해 열리며,

진심으로 사람을 대할 때 세상도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하루는 부끄럽지만,

동시에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이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저울질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