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왁스의 황혼의 문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흐르기 시작한 목소리와 선율이, 기억의 바람이 되어 제 마음 깊숙한 곳을 살며시 두드렸습니다.
노래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마치 시네마천국 속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내 오래된 기억 속 필름 통을 꺼내 영사기에 걸어주었습니다.
잊고 지내던 감정들이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흑백 사진처럼 펼쳐지는 내 인생의 장면들.
어린 날의 웃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남편으로 서 있는 날들의 떨림,
아버지가 된다는 마음의 무게,
그리고 부모님의 눈가에 새겨진 깊은 주름,
언제 그리도 빠르게 자란 아이들의 얼굴까지—
그렇게 평범한 날들이 얼마나 빛나고 귀한 순간이었는지, 노래는 조용히 나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때때로 보잘것없다 여겼던 삶도
돌이켜보면 슬픔과 기쁨이 겹겹이 쌓여
이제 제법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 평범한 삶이, 돌아보니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세월은 어느새 나를 붙잡아
황혼의 문턱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거울 속 매일 마주하는 얼굴에는
세월의 손길이 깊은 주름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 주름들은 살며 누린 기쁨과,
책임감으로 견뎌낸 슬픔의 흔적을
말없이 그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더 애틋한 날들이
흐린 사진처럼 번져 옵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듯, 나 또한 천천히 저물어가는 존재임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래의 마지막처럼, 저도 여전히 꿈을 품고 싶습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내 삶의 무언가, 남겨진 소명을 향해 걸어갈 용기와 건강이 그 길을 끝까지 다 걷는 날까지 제 안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곧 제 삶의 황혼이 찾아오더라도, 그때의 제가 오늘을 고맙다 말하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 잠시 멈추어 내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그 짧은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기억이 들려주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요한 행복을 느낀
따뜻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