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 서면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올해를 잘 살아냈는지,
충분했는지,
마음 한구석에 남은 후회는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인생은 하루도 시험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도
하루 중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시험 앞에서 나는 여전히 서툰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여실히 마주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바람이 멈춘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상황의 바람, 감정의 바람, 사람의 바람이
하루도 쉬지 않고 불어왔습니다.
어떤 날은 순풍이었고, 어떤 날은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맞바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시험은 바람이 잦아든 뒤에 치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한가운데서 치러집니다.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미룰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견디며 통과해야 하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얼마나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시험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어제 품었던 선하고 성실한 마음을
오늘도 지켜낼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하루였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바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의 시험을 통과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는
수줍은 소망을 품어 봅니다.
오늘은 법정 스님의 글이 떠올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봅니다.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어야 한다.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올라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배우고 익히며 탐구하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일깨워야 한다.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삶,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못다 쓴 시험지 한 장을
조용히 제출하고,
나는 다시
다음 하루를 향해
걸음을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