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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04. 2019

당신의 문 앞에 서서...

모든 문에는 이름이 있었다. 당신의 이름도... 

도어(door) 디자이너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네, 현관문 말입니다. 


런던의 거리를 걷다 보면 집집마다 너무나 다른 스타일의 현관문들을 보며 항상 궁금했어요. 

심지어 타운하우스 형태의 나란히 자리한 땅콩집도 분명 스타일이 같은데 유독 현관문 만은 다른 걸 알 수 있죠. 저는 '대체 영국 사람들에게 이 '문'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마음 속에서 계속 떠나질 않았습니다.  

나란히 자리한 두 주택이라도 현관문은 다릅니다.

영국 사람을 만나면 은근슬쩍 이 '문'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지만 사실 아무도 깔끔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마치 한국인에게 '왜 쇠젓가락을 쓰는 거죠?'라고 묻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 선택이자 처음부터 주어진 환경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으며, 시간의 훼손을 덜 입은 그라나다와 같은 중세 도시에서조차 어느 한 집도 같은 문을 가진 집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저는 언제부턴가 거리를 다니며 제 마음에 드는 '문'의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저의 엉뚱한 질문도 계속되었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문들 (위) 프랑스 니스의 문들 (아래)

한 번은 이런 재미있는 대답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이 모두 같으면 집을 찾아갈 때 헷갈릴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밤에는...." 


저는 속으로, "한국은 모두 같은 문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헤매지 않는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화는 이내 빠르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립니다.  


이 미완의 대화는 사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의 대답자는 '문'이 곧 자신의 'identity'와 연결되어 있음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은 벽안에  존재하는 나의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이자 나의 공간에 대한 일종의 '표기'가 되는 거죠. 


그에 반해 아파트가 주 거주공간인 한국은 획일화된 정체성에 오직 주어진 번호로 나의 위치를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24평과 32평을 가르는 동의 숫자와 3층의 2 열인지 5층의 1 열인지를 나타내는 호수로 구분되는 나의 공간인 거죠. 모든 공간은 동일한 구조와 자재, 동일한 현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라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대적 아파트 주거 공간의 특징입니다.  단지, 한국이 유독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아파트 거주율이 높기 때문에 더 두드러지게 되는 현상이죠. 


같은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저밀도 아파트는 조금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합니다.  프랑스 니스 여행을 갔을 때 묵었던 에어비앤비는 유럽형 저층 아파트로 빌라에 가까운 주택이었습니다. 공동 현관문과 로비가 있고 호텔과 같이 각 집이 복도를 따라 나란히 배열되는 구조였죠. 니스에 도착한 첫날, 이 공동현관문 앞에서 호스트를 호출하기 위해 인터폰을 보는 순간 당황했던 것은 각 집의 호수 대신 거주인들의 이름이 표기되었던 거예요. 

주인집 아주머니 이름이.... 뭐였더라....

저는 그제야 제가 묵으려고 하는 집의 호스트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랍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집 문 앞에는 명패가 달렸었는데....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숫자로 서로를 인식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거죠.  


이 '문'에 내거는 싸인, '이름'은 세상과 나와의 접점에서 나에 대한 표기제로의 역할을 더욱 강조합니다. 


저희 학교에서 가장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Tutor, Marcus에게도 '문'에 대해 질문해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대답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문은 네가 집과 첫 악수를 나누는 곳이잖아..!" 


집은 철근과 시멘트, 나무로 만든 무생체 공간이 아니라 나의 정신이 담긴 그릇 같은 공간이며 그 공간과의 첫 대면을 하는 접점이 '문'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내 공간에 들어오는 모든 타인들에게 따뜻한 악수를 건네는 그런 문이라는 말로요. 


이 것은 한 개인의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문의 디자인에 대해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우연히 한 논문을 발견했는데요. 그것은 아름다운 문의 디자인이 기능을 너머 우리의 무의식적 사고와 소통하고 'entry memories' 즉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 만들어지는 감정을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기억으로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죠. 특히 '미술치료(art therapy)'에서 문은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에 접근하는 도구로 치유를 돕는 다고 합니다. 




어쩌면, 영국인들은 그래서 이 문에 대한 디자인을 신경 쓰고 저마다 문 앞에는 화분을 내놓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첫 대면의 순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화분을 말이죠.  화분이 없는 집도 있지만 많은 집들은 문의 양 옆에 나란히 같은 종류의 화분을 배치합니다.  30cm의 정원을 만드는 거죠. 

저에게는 이 화분 두 개가 정원으로 보입니다.


때로 이 30cm의 정원은 벽을 아주 살짝 양보하여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20cm 정도만 들어간 여유 공간에 나무를 심은 것처럼요. 그것은 큰 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20cm 안으로 들어간 벽, 이 정도 여유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을 가장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식물, 그 컬러가, 향기가, 꽃잎과 나뭇잎의 모양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것을 문 앞에 내놓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느 지친 날 집으로 들어가는 저녁, 살짝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의 인사에 위로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리고 오늘도 이 엉뚱한 질문을 여러분에게 해보고 싶습니다. 

"문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세상엔 왜 이렇게 다양한 문들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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