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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20. 2019

선으로부터 上

익숙한 직선 vs. 낯선 곡선 

저는 직선을 좋아합니다. 


A지점부터 B지점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효율적인 루트인 직선은 속도와 효율성을 내포하며 어쩐지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선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직선은 'align(정렬)' 되었을 때의 질서가 주는 안정감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형태 자체가 주는 단순함에서 묻어 나오는 솔직함이 있습니다. 


이런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 있다면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일 것 같아요. 

가든 디자인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제가 곡선보다 직선 다루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인데요.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시는 태생이 직선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도시들, 우리는 직선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의 거리뿐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은 어떤가요? 직사각형이 아닌 건축물이 있다면 바로 튀는 환경이지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창문과 문, 그리고 그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가구와 전자제품들... 대부분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산업화 이후 규격화되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에 의존하는 우리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냅숏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직선에선 매우 도회적인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직선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들어설 땐 마치 느슨한 반바지보다는 정장이, 플립플랍보다는 구두를 신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말이죠. 


가든 디자인에서 이 직선을 잘 살리는 디자이너로 저는 단연 '샬롯 로우, Charlotte Rowe(https://charlotterowe.com)'를 꼽습니다. 최근 런던에서 뜨는 디자이너로 원래 홍보/PR agency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landscape architect로 커리어 전환을 성공적으로 한 분이죠.  저희 학교에 방문해 강의한 날도 있었는데 제가 받은 인상은 직선에서 느껴지는 그 도회적 이미지가 사람에게도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무엇이 효율적이고 어떤 디자인이 잘 팔리고 또 어떻게 클라이언트에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는 비즈니스 우먼이었습니다.  이제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기보다는 팀이 움직이지만 그녀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디자인을 소개해봅니다.  그녀는 특히, 루프탑 가든이나 도심 속 협소 공간을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게 메이크 오버하는데 강점이 있습니다. 

before (왼쪽) 심플한 공간 도면 (가운데) after (오른쪽)


샬롯 로우의 디자인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톤이 있습니다. 우선 자주 쓰는 스톤이나 나무의 소재로 바닥과 벽을 일관되게 마감하되 밋밋하지 않게 높낮이의 변화를 만들고 마치 가구를 배치하듯 식물들로 패턴을 만들거나 포인트를 줍니다.  식물들은 실내나 루프탑 같은 도시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식물들로 제한적으로 씁니다.  가든을 아웃도어라기보다는 인테리어의 연장선상에서 디자인하는 거죠.  


제한된 공간에서 이렇게 선들을 '세련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능력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가 country garden과 같이 넓은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그 강점이 사라지면서 초점을 잃는 듯한 디자인이 돼버리고 맙니다.  특히, 식물들의 선택에서는... 


그 뜻은 뒤집어 얘기하면 도시와 건축물의 직선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정원의 직선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자 이 선들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좋은 디자인의 전제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1950년대 아마 영국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디자인하며 활발히 활동했던, 그리고 저희 학교의 최초 director였던 '존 브룩스(John Brookes)'는 건축물 특히, 벽, 창, 문 등에서 연장되는 가상의 라인들로 grid를 만들어 정원을 디자인하는 그만의 방식을 구축한 디자이너로 유명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원을 인테리어의 연장선상으로 보았기 때문이고요.  그는 특히, 그 그리드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역시 코트야드와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직선만으로 몬드리안 그림과 같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비율을 재창조하는 거죠. 

존 브룩스의 도면과 몬드리안 그림 (왼쪽),  존 브룩스의 그리드로 그리는 정원 스타일 (오른쪽)

그러나, 이렇게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 저는 뭔가 2%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제한된 공간이 아닌 자연에 둘러싸인 오픈된 공간에서 직선만으로는 어색한 디자인이 나올뿐더러 우리가 열광하는 아이폰 모서리에 살짝 들어가는 곡선이나 아직도 캔보다 인기 있는 클래식 코카 콜라 병의 그 곡선은 우리에게 직선이 줄 수 없는 매력을 주장하고 있죠.  그러나 이 곡선은 저에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테리어스 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곡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루고 여러분에게도 질문해 보고 싶어요.  여러분에게 익숙한 선은 무엇인지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선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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