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Sep 30. 2019

푸른 것들에 관한 이야기 1

하늘, 숲, 물 시리즈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바다

우리는 모두 푸르다고 말합니다. 

파란 하늘을 반사시켜 푸른빛을 내는 물과 한 여름 녹음의 초록을 우리는 퉁쳐서 '푸르다'라고 표현합니다. 

한문으로는 '청(靑)'으로 쓰기도 하죠.  

그러니까 '청와대(the Blue House)'와 '청포도(green grape)'가 같은 '청'을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모두 푸른색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Kamal Boullata의 작품, 2009>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언어로 규정되는 것들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프레임을 씌우고, 언어화되지 못한 것들은 우리의 인식에서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blue'와 'green'을 구분하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뜻은 굳이 그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시대의 현실적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즉, 하늘, 숲, 바다가 '푸르른' 빛으로 통합된 '경관(landscape)'으로 인식되었던 시대, 수묵화의 검은 먹, 그 단색의 농담만으로도 표현 가능했던 '산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말하자면, '푸르름'은 곧 '자연'의 빛깔이며,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뜻입니다. 


이 푸르른 자연을 이루는 하늘, 숲, 물은 정원의 가장 기본적인 3 면 sky plane, vertical plane, ground plane을 말하며, 그 푸르름의 조화가 곧 아름다운 정원의 디자인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푸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요.  그리고, 그 푸른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를 '물'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원의 ground plane, 지면이라고 하면 넓은 잔디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의 하이드파크나 뉴욕의 센트럴파크의 넓은 잔디가 'public 공원'의 상징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잘 다듬어진 lawn(잔디)은 사실 영국에서 조차도 18세기 이후나 되어서야 대중화되었기도 했고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정원에서 가장 권위적인 상징적 요소였던 것은 다름 아닌 '물'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 '물'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유럽과 동양의 정원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 모습이 매우 달라 보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오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이란이 있던 중동 지역의 페르시아 정원인데요.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물'은 소중한 자원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인 '신 (al-Muihyi, the Giver of Life)'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를 죽은 땅에 신이 내리는 '생명수'로 생각했으니까요.  정원에 파라다이스를 구현하고자 했던 페르시아인들에게 이 풍요의 상징인 물이 정원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고 정원의 중앙에 자리하는 샘솟는 분수와 그 분수로부터 흘러나오는 수로(water channel)의 규모는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정원의 전형적인 구조
Alcázar of Córdoba, 스페인, 페르시안 정원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정원
영국의 Chatsworth House의 계단식 수로
Frank Gehry가 설계한 파리의 Foundation Loui Vuitton 건물의 계단식 수로

정원의 물이 '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되었던 배경, 즉 물이 가지는 생명의 힘을 저는 주목합니다.  사실, 오늘날 물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always available on demand'한 자원이 되었습니다만, 어쩐지 '죽은 물'처럼 느껴집니다.  새벽에 떠다 놓고 기도드리는 정화수에 깃든 그 생명력, 신성함이 원래 물이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스페인어의 agua, 프랑스어의 eau 모두 여성 명사죠.  또, '바다' 역시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로 la mer, 여성명사이나 스페인어로는 특이하게 el mar, 남성 명사로 쓰이는데, 헤밍웨이가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이를 'la mar'로 정정합니다.  저 역시, 물이 가진 부드러운 힘과 feminine 한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내 평온해지기도 하고, 수면 위로 비치는 하늘과 세상의 모습은 은근한 속삭임처럼, 바람이라도 스쳐 지나가면 한 편의 시가 되어 말을 건네죠.  


어릴 때부터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전 어김없이 "바다!"라고 답했습니다. 바다의 푸르른 색감은 산의 그 푸르른 녹음보다 더 강렬하고, 파도의 움직임은 더 생동감이 있으며, 무엇보다 어린아이에게 있어 바다로 뛰어들어 온 몸으로 느끼는 부서지는 파도의 촉감과 물에 반사되는 반짝이는 햇살, 가끔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비릿한 소금물은 산보다 더 매력적인 감각적 인터랙션을 제공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정원의 완성을 위해서는 이 '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을 전혀 쓰지 않은 듯한 일본의 석정(dry landscape)조차도 바닥에 물결 모양으로 쓸어놓은 모래는 '물'을 상징합니다.  물을 쓸 수 없는 경우,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대체제 - 예를 들면 거울 같은- 를 쓰더라도 말입니다.  때로, 물은 우리에게 한 그루의 나무보다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의 'peinture-poésie(Painting-Poetry, 시 그리기)' 시리즈 중의 한 작품입니다.  오른쪽 파란 물감 밑에 "ceci est la couleur de mes rêves" (this is the color of my dreams, 내 꿈들의 색깔)라고 적혀 있죠. 파란 꿈을 꾸었던 호안 미로.  그의 꿈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푸르름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나요?  당신의 꿈은 어떤 색인 가요? 

저에게 푸르름은 자연으로 다가옵니다. 저의 꿈은 거기서 시작합니다. 

"This is the color of my dreams" by Joan Miro, 1925


작가의 이전글 선으로부터 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