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랑은 기술인가?
아니면 사랑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 행운만 있으면 ‘빠져들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사랑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미롭다. ‘운명적 첫만남’ ‘드라마틱한 사랑의 시작’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될수록, 이야기는 흥미로워지고, 듣는 이들로 하여금 사랑을 꿈꾸게 만들곤 한가. 이 때문에 동화 속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사랑의 시작은 늘 인기 있는 소재다.
반면, 사랑이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대해서는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몇 구절로 간추려지기 일쑤다. 그들은 정말 오래오래 행복했을까? 그들의 사랑은 정말 '오래오래' 지속됐을까?
사랑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것들, 이를테면 운명같은 만남, 심장의 두근거림이 '오래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면 '사랑'은 끝난 걸까? 아니, '사랑'이 도대체 뭘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사랑은 "빠져들게 되는 즐거운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공부하지 않으면 구사할 수 없는, 기술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착각하며 사는 이유를 세 가지나 들었다.
1. 사랑문제를 사랑하는 능력('loving')이 아닌, 사랑받는 일('being loved')의 문제로 여긴다.
사랑과 관련된 문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사랑받을 만한 외모로 가꾸거나, 매력적인 대화술을 익히려 하거나, 부러움을 살만한 사회적 권력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2. '사랑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사랑할(사랑받을 만한) '대상'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프롬은 여기에 '자유', 그리고 '구매욕·상호 간에 유리한 교환'이란 현대문화의 특징이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자유'부터 살펴보자. 어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집안끼리 얘기 끝나면, 결혼식 할 때서야 남편 될 사람 얼굴을 처음 보는 거지."
과거의 결혼문화에서 결혼이란 가문, 관습에 의해, 또는 중매인에 의해 하나의 계약처럼 이행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랑하기'란 결혼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구 남친'이랑 헤어진지 1년 뒤쯤?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남자한테 첫눈에 반한 거 잖아. 연애한 지 벌써 3년째네. 내일이 상견례라니!"
그러나 지금은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자유연애가 가능하다. '낭만적 연애 후 결혼'이란 과정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랑에 있어 '자유'가 생기면서, 사랑할 줄 아는 '능력'에 비해 사랑의 '대상'이 매우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한편, '구매욕·상호 간에 유리한 교환'은 현대문화의 기반이 되는 특징이다. 프롬은 현대인들의 기쁨이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설렘과, 살 수 있는 것을 현금이든, 할부로든 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사람도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데에 있다.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 자신의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대는 자신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서로에게 유리한 교환이라 느낄 때, 비로소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상'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3.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혼동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기적과 같고, 이때 경험하는 행복감은 강렬하다. 그러나 이는 영원하지 않다. 사람들은 초기의 그 감정과 현재의 밋밋함을 비교하고 그 격정적인 감정이 막을 내렸으니, 사랑이 '끝났다'라고 여긴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지워버린다. .... 그들은 강렬한 열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책에서 이런 생각들이 오류임을 증명하고, 사랑이야말로 '기술'('art')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사랑 이론'을 풀어나간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철학자였던 세계적 지성의 '사랑 이론'을 담은 이 책은 수백만 부가 팔렸다.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가 전하는 사랑 이론, 그가 주장했던 사랑의 '기술'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 온라인 에디터로 활동하며 쓴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 이 글의 인용문은 『The Art of Loving』 원문과 『사랑의 기술』(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06)을 참고해 의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