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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쓸채은 Apr 01. 2024

엄마의 지갑을 노린다

20년 지기 친구를 2년 만에 만났다.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베프다,



친구가 된 건 고등학교 때.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며 서로의 집안 사정, 속 사정을 나눴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현 남편이 결혼 안 하겠다고 도망갔을 때도

내 옆에 있어줬던 소중한 내 친구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꾸린 지역이 달라지면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이가 빨리 생기는 통에 겨우 짬을 내 만나더라도 늘 아이들을 데리고 만났다.

데리고 만나는 아이가 처음엔 하나, 다음엔 둘, 그다음엔 셋이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만나면 친구를 만나는 건지, 공동육아를 하는 건지 헷갈린다.

만나서 각자의 아이를 돌보고, 서로의 아이들 돌보다 헤어진다.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던 아이들이 모두 기관에 들어가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친구와 단둘이 만났다.



아이 없이 만났는데 이야기 주제는 "아이"다.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를 둔 엄마로서 아이의 교육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친구는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는 동네에 산다.

친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즘 젊은 엄마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니다.



영어 유치원, 놀이 유치원, 병설 유치원, 부속 유치원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 평범한 동네도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예전 학원을 운영하던 지인이 초등학생 학부모 지갑 열기가 제일 쉽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친구를 만나고 나니 이젠 유치원생 학부모 지갑도 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도 첫째인 7살 아이 앞으로 한 달 드는 교육비가 120만 원 이상이란다.



입이 떠억 벌어졌다.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립유치원에 다니면서

도대체 뭘 얼마나 시키면 유치원생에게 월 120만 원이 드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가 6세부터 들어간 유치원에 적응이 힘들었다고 한다.



친구 관계가 어려워 보여서 센터에서 검사를 받게 됐고 6세부터 그 센터에서 치료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센터에서 아이가 처음 만난 친구를 대하는 화용 기술이 부족하다고,

아이가 속상하고, 화난 감정을 구분하지 못해 상대를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단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친구에게 화용 기술이 뭐냐고 되물었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 말을 걸고, 관계를 맺는 기술이란다.

나의 화용 기술을 되돌아봤다.

나는 화나고 속상한 감정을 구분할 줄 아는지도 생각해 봤다.



마흔이 가까운 나도 아직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속상하면 화나고, 화나면 속상한 것 같다.



그런데 6세에게 그 능력이 모자란다며 센터에서 치료 수업을 권했단다.

그 센터에서 아이가 일주일에 2번, 2개의 수업을 듣는데

한 수업당 교육비가 월 50만 원.

여기에 예체능 학원도 보내고 하다 보니 아이 교육비가 120만 원이 넘어선다고.



아이가 유치원 적응이 힘들어 보이니 엄마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겠나 싶었다.

지금 당장 아이의 현재도 불안하고, 앞으로 학교를 20년 가까이 다녀야 할 아이의 미래도 불안했을 거다.



부모는, 엄마는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1등이니까.



이런 엄마의 불안한 마음과 간절한 바람을 이용해

엄마의 지갑을 노리는 이들이 너무 많다.



현재 친구의 첫째는 올해 7세에 유치원을 옮겼고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이의 화용 기술이, 아이의 감정 구분 수준이라는 아이의 내적 문제가 아니라

이전 유치원이, 그 유치원의 친구들과 결이 달랐던 외적 문제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에겐 솔직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내가 첫째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지난 1년,

갓난쟁이인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한 손에는 첫째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2번씩 갈아타며 아이를 위해 애썼던 친구의 시간이 부정되는 것 같을 테니까.



헤어지면서 우리 집 아이도

새 친구들 사이에 끼여 놀지 못한다친구를 위로하는 나에게 친구는 검사를 권했다.

검사를 통해서 아이를 제대로 알게 되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겠냐고.



친구에게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보고 있자니

괜히 우리 집 아이도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자꾸자꾸 올라왔다.



아, 이래서 친구도 지갑을 열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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