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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기시대 Aug 02. 2020

그날의 난, 지금의 난  

2015년부터 지금 2020년까지의 나의 이야기

2015년의 난


2015년 3월,


35살, 2015년 3월 퇴사를 했다.

그 해 5월 양양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했던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15년의 서울생활을 막을 내렸다.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돈을 포함해, 내 수중에 남은 돈은 3,000여 만원,

그리고 준중형차 한 대, 아직도 못 갚은 학자금 대출잔액 200여만 원


그게 내가 가진 자산의 전부였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8년 넘게 했는데,

야근도 하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휴대폰 작은 화면에 표시된 내 통장잔고는

참으로 하찮아 보였다.


다만, 큰 빚지지 않고 살아서 부채는 학자금 대출 정도네.. 라며

위안을 삼았다.


그나마 남은 돈 어설프게 쓰지 말고 자그마한 땅이라도 사두자..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어머니와 돈을 합쳐

400평 조금 안 되는 동네에 밭을 하나 매입했다.


그래도 전재산 다 넣기엔 왠지 불안하여,

돈벌이 생기기 전까지의

기본 생활비와 남은 카드값, 휴대폰요금, 세금납부를 목적으로 남겨놓은 돈

500만 원..


사실 처음엔 완전히 통장을 0으로 만들고,

까짓꺼 벌면 되지.. 란 객기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진짜 돈 한 푼 없으면 어떡하지? 란 생각에 두려웠다..


집에 내려오자마자 구겨없애버린 신용카드는

2달이 지난 후에야 통장에 남은 카드값(한 300만 원정 도였나 보다.)을

모두 수거하고 나서야 완전히 내 곁을 떠나갔다.



2015년 6월,


그렇게 남은 돈 200만 원


사실, 두려움도 어느 정도 돈이 있을 때나 생기는 것 같다

이제 이 돈도 금방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엔 일단 통장은 0원으로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무슨 생각이었을까?

남아있는 돈이 사라질까 두려워 말고,

그나마 이 정도 남은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거나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밭에 있던 오래된 낡은 컨테이너를 보았고,

수많은 걱정과 비난 비아냥 속에,

남은 돈 200만 원 중, 180만 원을 들여

컨테이너를 뜯어내고, 자재를 사고 내외부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아지트인

Stoneage Union의 사무실이 생겨났다.


2015년 6월 10일 내 생일을 굳이 완공일로 잡은 내 아지트 Stoneage Union 사옥!

※컨테이너 제작 스토리는 아래의 브런치 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magazine/stonegeagit



말이 사무실이지

그냥 농막이다.


그런데 사무실이라 부르고, 사옥이라 부르고

내 브랜드를 딴 Stoneage Union이란 기업명을 부르고

부르고 부르다 보니

진짜 그럴싸한 1인 기업의 대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게 기분이 좋았고, 생각했다.


그래, 계속 말하다 보면 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이적 X유재석의 노래 말하는 대로처럼 말이다.


처음 무작정 이 공간을 만들어 놓을 때까지 난,

앞으로 이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만, 이런저런 재미난 상상들을 했다.


이 안에서,

내가 우연히 적어놓은 메모의 아이디어가,

내가 하고 싶어서 기획안 일들이,

나중에 진짜 그럴싸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 안에서,

사람들이 가득 차고,

즐거운 파티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이 안에서,

내가 성공담을 늘어놓으며,

겸손한 척 인터뷰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이 안에서,

이 안에서,

난 정말 즐겁고, 희망으로 가득 찬 상상들을 하루 종일 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일 그만 두 길 잘했다.

통장잔고 없애길 잘했다.

이 공간을 만들길 참... 잘했다.


잃을 게 없으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 느낌이랄까


돈 없으면 어떡하지의 불안감은 어느새 잊은 채

그저 난 지금 이 순간만을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


Stoneage Union 사옥 내부
Stoneage Union 사옥 내부


그리고,

진정한 백수

일도 없고, 돈도 없고

몸만 건강한 35살의 그저 시골에 사는 백수가 된 나는


그 농막의 책상에 앉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끄적거렸다.


그리곤 기왕이면 조금 있어 보이게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누가 볼지도 모를


우리 회사 (Stoneage Union)의 회사소개서를

나름 PPT에 적어나가면, 디자인했다.

브랜드 로고도 만들고, 브랜드 철학이니, 브랜드 피라 미드니,

사업영역이니,


언젠간 만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업소개서를 미리 작성하면서 혼자 키득거렸다.


직장에서 머리 싸매고 야근하며 담배를 물고 살게 했던,

그놈의 일들이 그저 재미있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나를 책망하거나,

혀를 끌끌 차며 정신 차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냥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나와 함께 밥을 드셨다.

그냥 그렇게 함께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나는 매일매일 그저 행복했었다.

덕업 일치 中 한껏 콘셉트 잡은 내 오글거리는 사진


책상에 앉아 끄적거렸던 메모들은 이러했다.


-엄마 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팔면 대박 날것 같은데

-네파 아웃도어 스쿨 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직접 아웃도어 프로그램을 운영해볼까?

-양양에서 뭐하고 돈 벌지? 정직으로 취직할 수 있는 게 있나?

-그림 그리는 게 재밌는데, 작가랍시고 계속 그리면 그림 그려 돈 벌 수도 있지 않을까?

-강아지를 키울까?

-나중에 유명해져서 인터뷰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게스트하우스를 해볼까? 근데 게스트하우스를 안 가봤는데 ㅎ

-조각을 해보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여행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서핑을 배우자


그렇게 적은 메모들을 구분하고,

어디서 주워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고 정리해갔다


*하고 싶은 일

- 작가가 되어 전시회 하기

- 1인 기업 창업하기

- 기업 콜라보로 작품 작업하기

- 책 쓰기 (무슨 주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 관공서와 계약해서 공공미술 차원의 벽화작업 크게 한번 해보기

- 수제 자동차 만들기

- 업사이클링 작품, 소품 만들어 팔기


*할 수 있는 일

- 그림 그려서 온라인에 올리기 (블로그, 브런치, SNS)

- 엄마 농사지은 농작물 팔기

- 글쓰기

- 계곡 트레킹 프로그램 기획 실행 (플랫폼 프립)

- 브런치에 글 올려서 공모전 당선되어 책 내기

- 내차 무쏘로 리스토어 한번 해보기

- 업싸이클링을 위해, 우선 쓰레기 등 수집해 모으기

- 게스트 하우스 운영하기

- 엄마 만두 개발해 보기


*해야 하는 일

- 기초생활비 벌기 위한 근로활동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은 참 많았다.

그에 반해해야 하는 일을 별로 적을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야 하는 일을 생각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 목적이 명확치 않았다.

그냥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휴대폰 통화료나 기초 세금(자동차세 등)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누구한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돈이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라 생각해서

어떤 투자금을 받기를 원했다거나,

건물이 필요하다거나, 하지 않았고,

그리고 아예 빚내서 할 생각은 더더욱 생각지 않았고,

지금 내 수중에 돈이 없기 때문에,

내 돈을 올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투자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이 되었다.

우선순위가 되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방해한다면,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그림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아직까지도 가장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선

투자비가 들지 않는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만이다.


직장인 시절 받았던 몰스킨 다이어리 3권과

서랍을 열면 언제 썼는지 잉크는 나오는지 알 수 없을

한 뭉치의 볼펜들이

내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었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내 이름 김석기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따,

진정 김석기의 시대가 열리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석기시대! STONEAGE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한 편, 두 편

누구도 정해주지 않은 나만의 발행일을 지키며

일주일에 두 편씩 그리고

SNS와 개인 블로그에 연재를 하다가

카카오에서 시작한 서비스인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에 호기롭게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종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산 화해 버린듯한 카카오스토리에도 올렸고,

카카오 채널에서 간간히 상위에 노출이 되면서

구독자 수도 갑자기 1,000명이 넘어버리기도 했다.


재밌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나에게 너무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래, 할 수 있구나, 될 수 있구나 라는 희망

석기시대의 그림일기를 그렸던 농막 안 책상 위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글을 끄적였더니

그것도 기술인 듯,

조금씩 글에도 내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적은 가능성들을 시험해보며

내 나름대로의 성공의 공식을 만들어 갔다.


35살까지의 성공의 공식은 무조건

돈이 기준이 되었던 것 같다.

뭐 직책이나 명성 등등도 있었지만, 그것 모두

어느 정도의 재력을 이룬 직책, 명성이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현실을 마주할수록

내가 이룰 수 없는 꿈인 것만 같았고,

목표로 삼고 달릴수록, 다람쥐 쳇바퀴 돌듯 허무함만 커갔다.


그렇게 성공을 위해 노력할수록

실패의 공식만 늘어갔다,


그랬는데,

이 작은 농막에서 난,

그렇게 찾고 싶었던,

나는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자기 개발서를 읽고 나서

오히려 공허함만 느껴지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던,

그래서 나 스스로 나를 책망하게 되었던,


바로 그 성공의 공식을 발견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

너무 큰 목표가 아닌 진짜 솔직히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만큼

이루게 하는 것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것

1년에 연봉 몇 억.. 이렇게 목표를 잡는 것이 아닌

1주일에 1만 원 적금 넣기처럼

당연히 내가 해낼 수밖에 없는 목표를 잡고

실제로 이루게 되고


그리고 성공했다 외치는 것


이것이었다.


이 이후의 일들은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공식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되었고, 적용될 것이다.


그게,

2015년의 일이었다.


35년의 시간이 헛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의 시행착오가

지금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 것일 테니,


다만, 나에 대한 측은지심도 있었다.


그래, 뭐한다고 난

나답지 못한 삶을 살면서

내가 삶을 잘못 살고 있다고 후회하고 살았을까


2015년 그날의 난

그 작은 컨테이너에 들어앉아

너무도 큰 내 세계를

그리고 내 주위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짜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모했고, 용감했다.


이렇게 살고 싶었다는 자존감이 높았다기 보다,

그냥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옹졸한 자존심이 더 컸었다.


행복의 단서를 발견하긴 했지만,

진정 행복했다라고 말하기엔,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쳤다가 더 맞는 말이겠다.


그렇게 2015년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털어

가장 임팩트가 컸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그렇게 내가 바라보던 세상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인 건

그날의 난

그날의 일들이

두려움 보다는 즐거움이었고,

뭔지 명확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저 웃고 살았다.


그날의 나

2015년의 나,

지금 기억하는 그날의 나는

평생기억하며 미소가 지어지는 나다


-2015년 끝-





<예고>2016년~2019년의 난,


사실 이 한편에 2015~2020년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다 쓰려했는데,

쓰다보니 할말이 많아졌다.

정리를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고,

그래서 부득이 시리즈물로 정리해 둘까 한다


주요 사진들로 지난 추억을 소환해보며, 예고해본다


2016년의 난,


무작정 한번 해본 계곡트레킹을 통해서 발견한 기회

그리고 공정여행을 알게 된 후의 나의 계획과 꿈

공정여행이란 개념을 알게 된 후, 여행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했던 나


아이더 클래스 법수치 계곡트레킹 中에서 강사로 임하고 있는 나





2017년의 난,

결혼,

그리고 관광두레 PD

아내가 초안그리고, 남편이 후터치 한 우리 결혼 청첩장



관광두레 PD에 선정된 후, 지역 소식지에 실린, 너무 어색한 표정의 내 얼굴



2018년의 난,


내가 그린 그림으로 채워진 벽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세상의 가장 큰 선물, 나의 아이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던 날

부부가 되고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탄생한, 그림부부


강릉항, 안목커피거리 방파제길 벽면에 그린 벽화작업 中
폐빠레트로 남편이 액자만들고, 아내가 그린 "그림부부"의 첫 간판



2019년의 난,


몰스킨 다이어리에 끄적이기 시작한 그림

그리고 꿈꿔왔던 기업과의 콜라보

그리고 업사이클링을 꿈꾸며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어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일

꿈꾸던 기업과의 콜라보, 게다가 드로잉 작가라는 꿈꾸던 명칭을 얻게 된 그날의 드로잉
내 손발이 되어준, 이젠 보내줘야 할 내 작업차 '황거(황금알을낳는거위의 준말,식상하지만 ㅎ)'
폐서핑보드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자르고 다듬어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마친 폐서핑보드
업사이클링을 꿈꾸며 가장먼저 시작한 폐서핑보드에 그림그리기



2020년의 난,


결국,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

지난 양양에서의 5년이란 시간동안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각각의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한군데 모여지는 순간

협동조합의 탄생


2020년 7월 양양청년협동조합 창립총회 현장
웨이브우드의 우든서프보드와의 합작을통해 탄생한 우든보드인테리어소품들


그리고,

내가 꾸었던 꿈의

2020년의 발현

지하의 어두운 벙커 속에서 발견하는 밝은 희망

꿈이 모인 곳 벙커 (실제 국방부의 것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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