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없이 자력으로 일어나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을 뿐
눈을 찌르는 듯한 햇살에 찡그린 눈을 힘겹게 열고,
기지개를 켜는 아침
웬일로 알람 소리에 힘겹게 깨지 않고,
자연기상을 한 걸까
웬일로
웬일로?
휴대폰은 어디에 있지?
체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름 두른 달궈진 프라이팬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튀어 오름과 동시에
내 두 눈은 그놈의 휴대폰을 찾느라
파르르 좌우로 요동치고,
본능적으로 나의 잠버릇을 알기에,
웬만하면 그곳에 있어야 할 핸드폰은
예상대로 베개 밑에 너무도 얌전히 있다
그 얌전함이
이토록 섬뜩했던가
영화에서나 볼법한
조심스레 다가가 숨은 쉬고 있는지
들숨날숨 확인하려고 코에 조심스럽게
들이대는 불안한 손가락처럼
달달달 떨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손으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듯
휴대폰 화면을 톡톡톡
아뿔싸
너무도 조용한 넌
숨져있었구나
생명선을 연결하고
휴대폰이 의식을 되찾을 약 1~2분간의 시간 동안
CPR 하듯 반복적으로 전원 버튼을 꾹꾹 누르길 반복한다
그사이 조금 더 돌아온 정신은
아까 눈에 내리쬐던 햇살이
스산한 출근시간의 새벽 햇살이 아닌
누가 봐도 점심의 공복을 부르는
뜨끈한 한낮의 햇살이었음을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켜진 녀석은
시원하게 욕한 사발 토해내듯
카톡 카톡을 연신 내뱉는다
얼마나 누워있었던 걸까
그 얼마나를 알려줄 정확한 데이터와 수치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해있었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변해버렸는지
그 세월의 흐름까지 숫자에선 말해주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 34통
카톡 121
팀장님 카톡
우리 팀 그룹 카톡
쿵쾅거리는 심장은
마치 고막에 붙어 있는 듯
머릿속까지 울려대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 11시 28분 현재
오늘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잊기 위해 마신 어제의 낮술이
큰 기여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어제의 내가 두려워하던 월요일은
오늘의 지금의 월요일에 비하면
두려운 것도 아니었구나
하
그래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되었지
자기 합리화와
자기 최면의 기술
적당히 늦느니
완벽히 늦는 게 낫다
어차피 늦었으니까
일단
아프자
아파야 한다
난 아픈 거다
아 진짜 아파서
몸져누웠으면 좋겠다.....
슬프지만 이것이
이전까지의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출근 싫어 퇴근 언제 해
퇴근하니 밤인데
밤이면 술이지
몰라 일단 마셔
취기에 잠을 청하고
숙취에 아침을 맞이하고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지?
그래서 나아진 게 뭐지?
누가 나한테 이렇게 살라고 시키던가?
결국 내가 선택한 건데
그냥
알람 꺼놓고
자고 싶다
그런 생활을 얼마나 했을까?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한 두 번 회사도 옮겨보기도 하고
이사도 해보고
청약적금도 들어보고
자동차도 한대 뽑아보고
주말에는 캠핑도 다니고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10여 년의
서울살이가 익숙해져
딱히 불편함을 모르던
2015년의 어느 날
난
사직서를 냈고
그렇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던
서울을
너무 쉽게 떠났다
-양양에 살러왔는데요 - 김석기 씨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