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가닉씨 Jun 29. 2021

이모가 돌아왔다

그 많던 이모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에겐 친 이모가 셋이나 있다. 복순 순이 점순(자경으로 개명한)이모인데, 미안한 말이지만 어릴 적엔 다른(?) 이모가 이보다 더 많았다.


  엄마 친구이자 동료, 아니면 엄마의 동네 언니나 요구르트 언니, 화장품 가게 언니 등 동네에서 이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형제가 없던 나는 이모들을 찾아 동네를 누비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엄마에겐 통하지도 않던 어리광이나 생떼가 이모한테는 한방에 통했기 때문이다. 이모를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당시 구하기 어려웠던 사탕이나 초콜릿이 손에 들려있었다.


  그 시절 이모는 보통 우리 집 골목에 있었다. 길을 걷다가 어느 이모나 삼촌을 만나 인사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위아래에 계시는 이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저녁이 되면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느라 홀로 서성이는 내게 윗집 이모는 꼭 저녁을 챙겨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미리 맡겨둔 것(?)이긴 했지만 과일 후식까지 푸짐하게 즐겼다.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엄마에게 윗집 이모는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말이 그렇지 사실 생각해보면 다 같이 어려운 형편에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긴 계단과 계단으로 연결돼 있던 서로의 집을 오르내리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그 시절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왜 흥했는지 짐작이 간다. 해 질 녘 ‘요놈’하며 내 손을 붙들고 집까지 데려온 건 옆집에 사는 공부하던 이모였다.


  이모는 시장에도 있었다. 엄마의 상황에 따라 이모도 약간씩 바뀌었는데 엄마가 머리에 한창 힘을 줄 때는 미용실 이모를 자주 만났고, 따라간 나는 덤으로 무려 다섯 갈래로 머리를 따고 미용실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설레는 스머프 치킨집 이모는 나를 유독 귀여워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튀김기 앞에 서서 치킨을 튀기던 스머프 이모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모가 튀긴 치킨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시장에서 김을 굽던 젊은 김 이모는 내가 제일 좋아했다.

  삼십 년이 다된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눈 화장을 힘주어 한 키메라 이모나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아모레 이모 등 이름만 모를 뿐 모든 이모가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아마 홀로 나를 키우는 엄마 사정이 딱해 더 마음을 썼던 모양이다.

  


빵집 이모는 아이들에게 선물도 빵빵하게 받는다.


  어느 날부터는 그 많던 이모가 하나둘 사라졌다. 굽이진 골목 대신 반듯한 구획으로 나뉜 아파트가 생활권이 되면서부터 그 많던 이모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땅에서 멀어진 집은, 모바일로 척척 장을 볼 수 있는 편리함은 시장도 이웃도 삼켜버렸다. 이런 문명의 혜택을 잘 누리는 사이 이모들의 바람대로 쑥쑥 잘 큰 나는, 이제 어엿한 빵집 이모가 되어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삶의 틈에서 다시 '이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내가 이모 당사자라니. 형제가 없는 내 생애 이모가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빵집 이모, 빵 이모, 밀집 이모 등으로 아이들의 기호껏 불릴 때마다 마스크 속을 비집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특히, 맞은편 서점의 쌍둥이가 까랑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모 소리도 기쁜 일과가 되었다.


  이모라는 특수 관계는 나와 손님을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었다. 대부분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 손님이 많은데, 아이에게 줄 빵을 만드는 내게 마음을 여는 건 아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손님에게 아이의 안부를 묻고 그 틈에 수다를 떨기도 한다. 손주를 위해 매일같이 식빵을 사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나를 '고마운 이모' 소개한다. 네가 좋아하는 빵을 만들어주기 문이란다. 평생 들을 일이 있을까 싶던 '고마운 이모'라는 말에 경직된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 해진다. 아이들의 작품 선물도 받는 것도 빵집 이모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종일 가게를 보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렸다는 그림  우리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빵집이 틀림없다.

  이모, 이모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시절 나를 예뻐해 주던 여러 이모들이 스쳐간다. 엄마와 연을 여태 이어가는 한두 분의 이모 말고는 다 어디로, 어떻게 흩어졌는지 안부를 물을 길이 없다.



귀여운 앞집 쌍둥이들이 종종 선물을 가져다 준다


"밀집 이모~"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뽐내며 앞집 쌍둥이가 건너왔다. 사이좋게 맞잡은 손에 들린 바구니엔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있다. 아아, 마침 더워서 갈증이 나던 때였는데 어찌 알고 이런 어마한 선물을 들고 왔을까. 시원하고 따뜻한 선물이다. 먼 훗날 이 쌍둥이들도, 단골손님의 아이들도 이 '빵집 이모'를 기억할까.


  여하간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동네 이모가 되어 있다. 맛있는 빵 냄새를 풍기는 작은 집에 있는 동글한 이모. 부디 아이들의 기억 속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을 만드는 그리고 나를 누구보다 예뻐해 주는 이모이면 좋겠다. 부디 이들도 나처럼 따뜻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 빵집 이모가 있던 이 골목은 참 따뜻했었노라고.





  날이 정말 덥습니다. 작년만 해도 이렇게 날이 덥거나 비가 많이 오면 농사짓는 분들을 떠올리며 맘을 졸였는데, 올해는 너무 바쁘다 보니 이마저 잊고 살았습니다. 지난주에 단골손님이 '감자가 맛있을 때'라는 이야기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하지감자가 나올 때더라고요. 이번 주부터 부랴부랴 감자 빵도 구웠습니다.

이맘때엔 꼭 온갖 푸성귀와 옥수수, 감자 등 먹고사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정작 제 식탁은 단출해졌습니다. 물론 엄마가 매 끼니를 잘 챙겨주시긴 하지만, 제 손으로 직접 해 먹는 게 손에 꼽아요. 여름엔 먹을 것이 많아 바쁘다던 재미(?)도 잊고 살지만, 그 아쉬움은 빵으로 달래고 있습니다.

  글 읽는 분들 모두 부디 맛있는 하루 보내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빵의 속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