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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Jan 09. 2023

우리의 새벽 밤은 당신의 낮만큼 길다

겨우 깨달은 사실에 대하여


 

  “왜 이렇게 장사를 쉽게 해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비교적 적은 영업 일수(주 4일 운영한다)와 짧은 운영 시간(오전 열한 시부터 빵이 다 팔리면 마감한다)을 거듭 확인한 그녀가 순식간에 쏘아붙였다. 나온 지 일 년도 더 된 빵을 새 메뉴라고 하는 걸 보니 최소 일 년은 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녀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가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게 힘을 준 몇몇 손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동안 꽤 자주 가게를 찾았고, 어쩜 이리 빵이 맛있냐며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고 점잖은 말투로 나를 격려했다. 그게 고마워 그녀에게 따끈한 커피를 내어준 기억도 있다. 그녀는 듣고 있어도 또 듣고 싶은 말을, 또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해주었다. 내 기억이 정말 맞다면.

그러니 그녀에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에 화들짝 놀랄 법도 하지 않은가.


  “조금 더 일찍 못 열어요? 무슨 빵집이 점심 다돼서 열어..”

  “더 빨리 열려면 제가 새벽 세 시에는 나와야 해요. 지금도 새벽 네 시에 나오는데, 혼자 하다 보니 아무리 서둘러도 열한 시는 돼야 빵이 나오고 영업 준비를 할 수 있거든요.”

그 순간은 나도 지고 싶지 않았다.


  “아, 새벽 네 시? 나도 그 시간에 깨어있는데요?”


대화를 더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분명 이러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아주 작은 호의조차 순식간에 사라졌다. 쇼케이스를 채우기 위해 내가 매일 새벽마다 무슨 사투를 어떻게 벌이는지, 구멍가게여도 운영이라는 걸 하려면 무엇을 감당하고 포기해야 했는지, 주머니 속 헝겊에 끼인 밀가루 먼지를 까뒤집어 보이고 싶은 전의도 생겼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때 나를 격려하던 그녀가 맞는지 내 기억을 의심하는 편이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빨랐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인상이 어째 괜히 사납게 바뀐 것 같고 하여간 꽤 혼란스러웠다. 안녕히 가시라는 점잖은 인사는 잊지 않았으나, 한동안 어리둥절해서 두 손이 갈 곳을 잃었다.

대체 그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인데 이제야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사실 다른 손님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긴 어쩌면 그녀에겐 내가 한다는 고생을 이해해야 할 의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에게 무상으로 빵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 그만한 빵값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아도 이건 엄연히 경제 활동의 일부이니까 말이다.


말만 그렇지 사실상 새벽은 밤이 더 깊어진 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에 출근이 아닌 퇴근을 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나와 같이 출근을 하는 자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은 깊고 긴긴 새벽밤을 거닐며 깨닫게 되었다. 겨울은 밤이 길고 여름은 밤이 짧다는 우주의 신비를 몸소 체험한 것도 처음이다. 지레 짐작한 것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엔,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이 모든 게 이 년을 넘도록 스스로 약속한 시간을 단 한 번도 어기거나 미루지 않고 알게 된 것들이다. 아마 모두에게 있어 이를 ‘경험’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열 평 남짓한 공간에 혼자 있는 나도 이럴진대, 더 다양한 범위에 걸쳐진 삶(중년인 그녀가 직장인이나 프리랜서, 혹은 무직일 수도 있고 아이를 양육하거나 남편과 가정을 이루는, 혹은 일 인 가구일 지도 모르나 여하간 나보다는 더 변수가 많은 상황인)을 사는 그의 지난 일 년 간 있던 변화를 가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겪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사정을 다 알지 못하다는 진리는 뻔하고 분명해 보인다.



어둡고 긴 새벽, 누군가에겐 더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일 지도


고작 오후 한두 시쯤 되었을 뿐인데 텅텅 빈 쇼케이스를 마주한 손님 중 대부분은 ‘이제 집에 가면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 말엔 조기 퇴근하는 것처럼 보이는(오후 4시만 돼도 나는 하루에 꼬박 열두 시간 노동을 한 셈이다) 나를 향한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가 섞여 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오히려 내 퇴근을 격려하는 손님도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리 빵이 빨리 팔려도 다음 날을 위한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현실은 아마 빵으로 먹고사는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오전 아홉 시에 출근해서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하는 삶에 갑갑함을 느꼈던 나는 그 물음 아닌 물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구구절절 내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분명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가 좁았던 내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나는 어두운 새벽 밤보다 볕 쨍쨍한 한낮을 더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일주일 중 나흘은 새벽 네 시가 되기 전에 깨어야 하고, 벌써 몇 천 번이 되었을 같은 손짓으로, 또 같지만 매일 다른 빵을 굽고 나서야 겨우 알아 차린 묵직한 사실이다. 지레 챈 짐작은 한없이 가볍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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