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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Jan 31. 2021

소피 아줌마, 후앙 아저씨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꾸엔까는 에콰도르의 한 소도시이다. 에콰도르 자체도 한인이 많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꾸엔까에서 한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수도 끼또, 해안도시 과야낄 다음으로 세 번째쯤 되는 그곳에 한인이 드문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1세대 한인 이주자들은 장사로 이민살이를 시작했으므로, 국제공항이 없고 바다에서도 먼 꾸엔까는 장사를 하기에 불편했다.


그런 꾸엔까에 ‘한국학교’라고 간판을 단 작은 학교가 있었다. 때는 2004년. 한류는 아직, 파도라기보단 졸졸 흐르는 시냇물 정도인 시기였다. 생뚱맞은 그 학교의 기원은 각종 무술에 흥미를 가지고 수련하던 한 현지인 사범이 태권도를 맛보고서는 시작한 태권도 도장이었다. 이국땅의 태권도 도장이 갸륵했던 탓인지, 한국 대사관에서는 도복 등 약간의 지원을 해주었다. 이거다 싶었을까. 지원의 맛을 본 사범은 ‘한국학교’라는 이름을 내걸었고, 시시때때로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초중고생을 다 합해봐야 50명도 안 되는 학교였다. 딱히 태권도를 배우는 것 외에 한국과는 별 관련 없는 그 학교에 한국어 교사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대사관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봉사단원을 파견했다. 그게 나였다. 스페인어라곤 간단한 회화만 익혀가지고 온 나는 절대적으로 교감의 도움이 필요했다. 집부터 구해야 했고, 지리나 교통편도 익혀야 했다. 그러나 염불보단 잿밥에 관심 있던 교감은 아직 스페인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붙들고 대사관님은 언제 오느냐 거나, 물품 지원은 없냐는 물음만 늘어놓았다. 그래도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는지 나를 한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가게에는 꾸엔까의 유일한 한인 부부가 있었다. 후앙 아저씨와 소피 아줌마는 에콰도르의 거의 초기 이민자였다. 그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민사회가 속 시끄럽다며, 낙향하듯 그곳에 터를 잡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웬 한국어냐며 의아해하면서도 몇 년 만의 한인이라고 반가워했다. 사장님 사모님 같은 말은 닭살 돋는다며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청했다. 처음 만난 날 부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날의 저녁 메뉴는 내 평생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였다.


정. 요즘 시대엔 오지랖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오지랖은 타인이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로 경계를 넘는 일이다. 그것은 때로 불쾌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빈 손으로 내던져진 존재였다. 수도에서처럼 사무소의 직원도 없었고, 선배 단원도 없었다. 무엇으로 불리든 그 연결이 없었다면 나는 내 고단함에 눌려 현지인들과도 소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 부모는 좀 차갑고 방임적인 이들이었다. 나는 성장과정에서 많은 과업들을 혼자 처리했다. 책이 부모가 되어준 일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그들은 부모를 알려주었다. 고향이 되어주었다. 그들에게 기운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그들 역시 나를 식구로 대했다. 오이지,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서부터 한국서는 귀찮아 안 하는 게장, 꼬리찜을 아줌마에게 배웠다. 엄마와도 함께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부부의 손주에게 나는 한국어 선생이 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을 떠올린다. 아니, 이젠 그들이라고 부를 수 없다. 몇 해 전 소피 아줌마는 이런저런 서류를 정리하러 한국에 다니러 오셨다. 만나자마자 촉촉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오래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시고는 바로 돌아가셨다고. 뜻밖의 일이었다. 아주머니는 예의 소탈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어깨가 전보다 수그러진 듯 보였다. 남편도 없는 꾸엔까를 떠나 딸과 사위가 있는 미국으로 가신다고 했다.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SNS가 활성화되기 이전이니 서로 여러 번 터와 연락처가 바뀐 뒤 연결이 끊어졌다.  또 뵐 수 있을지. 그 날을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뵙는 날을 닿는 날을 여전히 나는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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