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 그리고 '비어 있음'의 철학
<쿵푸팬더> 영화를 보다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쿵푸영웅이 왜 하필 ‘팬더’인 것일까? 무적의 5인방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다. 포의 넘치는 뱃살과 굼뜬 동작으로 보건대 쿵푸는커녕 산에도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쿵푸팬더>가 팬더를 쿵푸영웅으로 설정한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장은 ‘쿵푸’와 ‘팬더’라는 두 중국적 소재 중 두 번째인 ‘팬더’에 대해 얘기해볼 것이다. 팬더는 중국에서 어떤 동물인가? 전세계에서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 바로 팬더라는 동물이다. 팬더는 중국 쓰촨성의 청정지역에만 유일하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귀여운 외모와 느릿한 행동으로 중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중국은 이런 팬더를 매우 특별하게 여겨 외교적으로도 이용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로 삼았을 뿐 아니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나라에 환대와 호의의 표시로 팬더를 기증하는 ‘팬더 외교’를 행하기도 한다. 팬더는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면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표현하는 동물인 것이다. 포는 중국판 <쿵푸팬더>에서 ‘아바오(阿寶)’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보배 보(寶)’자는 중국인들의 팬더 사랑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팬더는 사실상 서식환경이 매우 까다로운 데다 천성이 게을러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먹는 데에만 하루의 반나절을 보내고, 하루에 12.5kg의 양에 달하는 어린 죽순만 먹으며, 한없이 게을러서 번식률까지 낮다. 어찌 보면 성가시고 귀찮다고까지 할 수 있는 이 동물을, 아무리 귀엽고 희귀하다 한들 이렇게까지 아끼고 보살필 수 있을까? 중국인들의 팬더 사랑을 보면 참 아이러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팬더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것은 게으르고 손이 많이 간다는 바로 그 특성 때문이 아닐까? 바로 노자(老子)가 설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쓰임이 있다(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비어 있음이란 어떤 것의 결핍이 아니라 도리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부족한 존재는 그 부족함 덕분에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성경>에도 보인다. <고린도후서>는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다. 연약한 자가 도리어 더 많은 신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유명한 ‘바보 이반’도 비슷한 맥락이다. 바보 이반은 본래 러시아 민담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언제나 삼형제 중 가장 어리석고 바보스런 막내로 등장한다. 반면 돈만 밝히고 욕심이 많은 형들은 자신의 것만 챙기고 부귀영화를 좇느라 바쁘다. 형들은 자신들처럼 이익에 밝지 못하고 늘 바보 같은 이반을 구박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부와 권력, 승리를 차지하는 영웅은 도리어 이반이다.
<쿵푸팬더> 속 포 역시 이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포는 쿵푸를 좋아하기는 해도 애초에 무예라고는 전혀 없는 데다 먹을 것에 사족을 못 쓰는 한없이 굼뜬 팬더에 불과했다. 국수집 아들이지만 아빠를 도와 국수를 만드는 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가 ‘용의 전사’로 지목된 후에도 모자람 투성이인 팬더의 모습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던 팬더가 시푸의 이른바 ‘특별 맞춤 수련’을 받게 되어 쿵푸영웅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시푸의 특별 맞춤 수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이다. 처음에는 시푸도 포의 자질을 알아보지 못했다. 포가 너무 모자라 보였기 때문이다. 시푸는 모자란 포를 달가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하에서 그를 쫓아내려고까지 했다. 그랬던 시푸가 포를 위한 특별 맞춤 수련이라니? 이 변화의 지점에 바로 ‘비어있음’의 논리가 있다.
이 과정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타이렁의 감옥 탈출과 함께 위기의 순간이 닥쳐왔을 때 시푸는 시름에 잠겨서 복숭아나무 아래에 있는 마스터 우그웨이에게로 달려간다. 마스터 우그웨이는 시푸에게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며, ‘그저 믿어야 한다’고 재차 당부한다. 우그웨이가 복숭아나무 꽃잎에 둘러싸여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시푸는 고민에 휩싸인다.
하지만 시푸는 결국 우그웨이의 당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팬더 포를 특훈시킬 방법을 밤낮으로 고심하던 어느 날, 시푸는 계단도 잘 못 오르던 포가 먹을 것만 보면 저 높은 찬장도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올라가 다리찢기를 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발견한다. 시푸는 이와 동시에 포를 훈련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결국 포에게 꼭 맞는, 만두를 이용한 특별한 맞춤 수련을 고안해낸다.
이 지점에서 다시 애초의 논의로 돌아가보자. 시푸의 맞춤 수련은 바로 노자적 관점의 ‘비어 있음’의 논리가 적용된 결과다. 팬더 포의 영웅적 자질이 ‘비어 있음’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포가 만일 무적의 5인방처럼 이미 뛰어난 쿵푸의 소지자였다면? 혹은 본인만의 쿵푸 수련 방법을 이미 갖고 있었다면? 시푸는 그에게 해줄 것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는 말그대로 정말 아무런 무예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시푸는 도리어 온 정신을 집중해서 맞춤 수련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어 있음’이란 곧 채움의 가능태이다.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으면 당장은 그 무언가로 돋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모든 것의 가능성은 배제한 상태가 된다. 그 다른 것이 더 뛰어난 것이거나 자신에게 더 적합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우고 싶다면 결국 있는 것을 비워내야 한다.
노자의 ‘비어 있음’의 철학은 곧 불교의 ‘공(空)’ 개념과도 통한다. ‘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존재는 특정한 한 의미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라는 뜻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은 이러한 도리를 설파한다. 우그웨이가 시푸에게 ‘그저 믿어야 한다’라고 끝까지 당부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용의 문서가 텅 비어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고수의 쿵푸비법이 적혀 있다는 전설의 용의 문서. 타이렁의 습격을 앞두고 결국 포 일행은 용의 문서를 열어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포가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뭔가 대단한 비법이 적혀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포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비어 있음’의 역량 아니겠는가? 용의 문서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그 가치는 마음먹기에 달려있게 된 것이다. 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제 포 자신의 가능성으로 용의 문서를 채울 수 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씬에서 우리는 비어 있음이 곧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빈 문서에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온 포는 피난을 떠나려는 펠리컨 아빠에게 자신이 아빠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포에게 펠리컨 아빠는 국물제조기법에서 특별한 재료란 사실상 아무 것도 없고, 특별하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아빠의 말을 듣고 포는 불현듯 비어 있는 용의 문서를 다시금 꺼내본다. 그리고 문서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순간 비밀재료라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어 있던 용의 문서는 이렇게 포의 확신으로 채워지고, 포는 이제 악당 타이렁과 맞서기 위해 달려간다.
타이렁은 애초에 용의 문서를 탐내다가 악당이 된 존재다. 그래서 포와의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용의 문서를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런 타이렁에게 포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해준다. “비밀 재료라는 것은 없어. 그건 단지 너 자신이야. (There is no secret ingredient. It’s just you.)”
우리는 흔히 자신이 경험하거나 학습한 한정된 지식체계 내에 자신을 가두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믿지 못한다. 장자(莊子)는 대붕(大鵬)의 비유를 들며 이 점을 꼬집었다.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 곤(鯤)이 변신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된다는 이야기다. 붕새는 날개를 펼쳐 날면 마치 하늘이 구름에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크기가 크고, 9만 리 높이까지 솟아올라 여섯 달 동안 쉬지 않고 날 수 있다. 하지만 매미와 비둘기는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비웃는다. 자신들은 결심하고 날아도 때로는 나무에 가 닿지도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뚱뚱하고 굼뜬 팬더 포를 보면서 우리는 처음에 그가 쿵푸고수가 될 수 있을지 의심했다. 사실상 시푸, 무적의 5인방, 심지어 포 자신도 처음에는 그랬다. 대붕 이야기의 매미와 비둘기처럼 한정된 경험과 지식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시푸에게 ‘그저 믿어야 한다’고 했던 마스터 우그웨이의 당부, 그리고 ‘특별하다고 믿으면 된다’고 했던 펠리컨 아빠의 가르침은 스스로 그러한 한계를 깨뜨리고 나올 것을 말하고 있다. 비어 있는 곳을 확신으로 채우면서, 쿵푸영웅 팬더는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비어 있음의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꾸는 자, 영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