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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osean Sep 21. 2018

[쿵푸팬더와 아시아의 눈] 포의 영웅적 자질Ⅰ

쿵푸와 ‘유협(遊俠)’

쿵푸권법의 달인인 용의 전사 포. 그리고 전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무적의 5인방. 그들이 함께 의기투합하여 막 십만대군의 적을 쳐부수려고 하는 장면. 바로 <쿵푸팬더> 1편의 오프닝임을 기억할 것이다.


꿈 속의 용의 전사와 5인방
십만대군을 마주한 용의 전사와 5인방

 

   그러나 이 장면들은 어딘지 현실감이라곤 없다. 곧, 펠리컨 아빠의 “일어나!”라는 외침에 이 모든 꿈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만다. 국수집 아들 포는 잠에서 깨자마자 창틀에 올려둔 무적의 5인방 피규어 이름을 하나하나 읊고 동작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넘쳐나는 뱃살 때문에 벌떡 일어나지도 못하고, 과녁 맞추기는커녕 계단조차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 내려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방금 전 꿈 내용과의 심각한 상위(相違)를 느낀다. 이 뚱뚱하고 굼뜬 팬더가 과연 쿵푸영웅이 될 수 있을까?

     

5인방 피규어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동작을 흉내내는 포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 내려오는 포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포의 꿈은 마치 예지몽처럼 실현된다. 포는 우여곡절 끝에 마스터 우그웨이에 의해 용의 전사로 지목되어 시푸의 맞춤 수련을 받고, 결국 악당 타이렁을 물리치는 쿵푸영웅으로 거듭난다. 게다가, 처음에는 포를 구박하고 왕따시키기를 서슴지 않았던 무적의 5인방도 어느새 든든한 아군이 된다.

   

  ‘쿵푸’와 ‘팬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두 소재는 중국문화의 중요한 코드이면서, 우리로 하여금 포의 영웅적 자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 된다.


'쿵푸'와 '팬더'라는 두 코드


   이 장은 그 중 첫 번째 소재인 ‘쿵푸(Kungfu)’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쿵푸는 ‘공부(功夫)’의 중국식 발음에서 왔으며, 무술(武術)의 중국 발음인 ‘우슈’와 같은 말로, 중국의 전통무술을 가리킨다. 육조 시기 중국에 선종을 전해준 인도의 달마대사가 고대 인도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그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이 설도 거짓인 것으로 판명나기는 했지만.) 여하튼 쿵푸는 이른바 ‘명문정파’라 일컬어지는 6대 문파(소림파, 무당파, 아미파, 공동파, 화산파, 곤륜파)를 형성하며 다사다난했던 중국 역사와 함께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오늘날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쿵푸영웅은 청나라 말 항일독립운동과 민중구제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인 ‘황비홍(黃飛鴻)’일 것이다. 그는 소림권 계통의 유파인 ‘홍가권(洪家拳)’의 수장이었는데, 그의 문하 중 상당수가 홍콩에서 영화와 출판업에 종사했다. 1950년대에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황비홍의 이미지가 쿵푸의 주요 이미지로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지러운 난세에 힘없는 민중을 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의(義)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황비홍의 모습이 곧 쿵푸영웅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다. 이는 <쿵푸팬더>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포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쿵푸의 동작 중에는 ‘상형권(象形拳)’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동물의 동작을 모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의 동작을 모방한 호권(虎拳), 사마귀의 동작을 모방한 당랑권(螳螂拳), 학의 동작을 모방한 학권(鶴拳), 원숭이의 동작을 모방한 후권(猴拳), 뱀의 동작을 모방한 사권(蛇拳) 등이 모두 쿵푸의 주요 권법인 것은 쿵푸팬더의 5인방 캐릭터가 타이그리스(Tigress), 맨티스(Mantis), 크레인(Crane), 몽키(Monkey), 바이퍼(Viper)로 구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각각의 동물을 본따 만든 쿵푸권법을 실제의 동물 캐릭터로 절묘하게 표현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팬더 포의 권법은? 팬더의 권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포의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이어지는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으로 미루어보건대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교묘히 균형을 취하면서 상대를 교란하며 가격하는 취권(醉拳)과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쿵푸동작을 취하는 포와 무적의 5인방


   우리에게 쿵푸는 이외에도 ‘무협(武俠)’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무협 하면 영화 <정무문> 시리즈의 배우 이소룡, 성룡, 이연걸의 무술 동작들이 떠오르는가 하면, <와호장룡>의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강호 속 여러 유협들의 무술 동작들도 떠오른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처럼 무협과 코미디가 결합된 영화들도 있다. 무협소설로 보자면 중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김용(金庸)의 작품들은 이미 아시아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꾸준히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리메이크되고 있다. 무협은 아시아권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중문화 소재이고, 쿵푸는 이러한 무협이 성립되도록 하는 기본 바탕이므로 무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협이란 어떤 것인가?

  

   ‘무협’이라는 단어에서 ‘무(武)’가 쿵푸의 영역이라면, ‘협(俠)’이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특성을 의미한다. ‘협(俠)’이라는 글자를 보면 ‘사람 인(人)’에 ‘낄 협(夾)’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협(夾)’은 낀다는 뜻에서 ‘부축하다’, ‘좌우에서 돕다’ 등의 뜻까지 포함한다. 즉 어려운 사람을 돕는 행위를 의미한다.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유협열전(遊俠列傳)>에서 “그 행동이 비록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으나, 그 말은 틀림없이 믿을 만하고 그 행동은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며, 한 번 허락한 일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어려움을 무릅써 가면서 남을 도와 죽고 사는 것을 잊는다.”라는 말로 ‘유협(遊俠)’에 대해 논평했다.

  

   사마천이 말한 이 ‘유협’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그 연원은 저 멀리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저기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이어지던 약육강식의 시대, 각 나라의 제후들은 혈통에만 기대려는 귀족 대신에 포부가 있고 능력이 출중한 서민들을 ‘국사(國士)’로 등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소국은 금방 강대국에 합병되었고, 약소국의 국사는 갈 곳을 잃고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떠돌이 신세가 된 국사들은 ‘유사(遊士)’라 불리며 여기저기서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고, ‘유협’은 바로 이들 중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마천은 유협에 대해 논평하며 행동이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한 번 허락한 일은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회의 규범보다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이러한 유협의 존재는 위협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법가사상을 주창한 한비자(韓非子)는 ‘협은 무(武)로써 법을 어긴다’라고 하면서 협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협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원칙을 택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획득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평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평화를 지켜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유협은 강호를 떠돌며 어려운 이를 돕고,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영웅들이다. 그렇다면 무협이 담고 있는 쿵푸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유협의 도(道)를 담고 있는 문화코드라 할 수 있다.


강호를 떠도는 유협의 모습에 겹쳐지는 꿈속의 포


   이제 유협의 이러한 이미지와 관련지어 쿵푸영웅 포의 출생과 운명을 다시 상기해보자. 유협, 그들은 귀족처럼 고귀한 혈통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어려운 이를 돕고, 자신이 한 번 마음먹은 일에는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포는 어떤가? 사실상 포는 애초에 전혀 쿵푸를 할 수 있을 법해 보이지 않는 외모도 외모거니와, 다소 비장하기까지 한 유협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리는 포가 자신의 출생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내면의 평화(inner peace)’를 달성한 후 스스로의 운명을 완성해가는 것을 보게 된다.

   

    포의 출생의 트라우마와 그 극복 과정은 <쿵푸팬더> 2편의 악당 공작새 셴으로부터 시작된다. 셴은 쿵푸사부들을 모두 제거하고 중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옛날에 셴은 팬더가 자신의 야심을 막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팬더들을 몰살시킨 적이 있는데, 이때 아기 포는 난리통에 엄마와 떨어져 혼자 남겨졌다. 국수집을 하는 펠리컨 아빠의 손에서 자란 포는 훗날 쿵푸고수가 되었지만, 셴과 대적하다가 ‘부모가 널 버렸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동요한다. 포는 셴이 급작스레 던져준 트라우마 때문에 그의 가혹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하지만 점쟁이 산양의 도움과 치료로 외상이 회복되고, 결국에는 ‘내면의 평화’도 달성해낸다. ‘내면의 평화’를 달성했다는 건 다시 말해 출생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음에 다름 아니다. 이제 포는 호기롭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가, 유협의 삶과 비슷하지 않은가? <쿵푸팬더> 시리즈 감상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는 어떻게 ‘내면의 평화’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마침내 친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해낸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의 삶에서 펠리컨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리고 쿵푸와 5인방 동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상기한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동료들을 구출하고 쿵푸와 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포는 이제 셴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포의 운명을 예견했던 점쟁이 산양이 “자, 넌 누구지, 팬더(So, who are you, panda)?”라는 질문을 던지자, 포가 “나는 포예요(I’m Po).”라고 비장하게 대답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바로 ‘내면의 평화’를 달성한 포가 자신의 운명을 담대하게 선택하고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다.


“자, 넌 누구지, 팬더(So, who are you, panda)?”
“나는 포예요(I’m Po).”


    ‘유협의 도’를 체현한 쿵푸영웅 포의 활약은 이렇게 빛을 발하게 된다. 죽음의 위협이 다가올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의(義)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나서는 포. ‘내면의 평화’를 얻은 후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가는 그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쿵푸영웅의 모습을 본다.     


쿵푸영웅이여, ‘내면의 평화’를 얻고 난세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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