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osean Sep 13. 2018

[쿵푸팬더와 아시아의 눈]
왜 ‘용의 전사’인가?

‘도(道)’ 안에서 ‘기(氣)’를 마스터하라!

 <쿵푸 팬더> 시리즈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용의 전사(dragon warrior)’를 선발하는 일로 서두가 시작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용이라고는 제이드 궁전 천장에 조각된 용이 용문서를 입에 물고 있을 뿐이다. 왜 하필 ‘용의 전사’인 것일까? 관객들의 의문은 3편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카이와의 전투 도중 영혼계로 건너간 용의 전사 포가 ‘용의 화신’이 되어 악당 카이를 물리친다. 팬더 포는 말 그대로 진짜 ‘용의 전사’였던 것이다.     

제이드 궁전 천장의 용문서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형상
용의 화신이 된 용의 전사 포

 

   ‘용’이란 어떤 존재인가? 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 동물로, 서양의 판타지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상서로운 동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에서 용은 옛날부터 쳐부수어야 할 괴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에서 용은 매우 신성한 동물로 통했다. 대표적인 유가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기록을 보면 용을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 즉 네 종류의 신령스러운 동물로 꼽고 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용을 우주와 자연의 힘을 상징할 뿐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농경이 중심이던 고대 사회에서 용이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은 바로 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 역시 용을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수신(水神)으로 여겨 왕실과 민간 모두에서 숭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막강한 권력자인 황제가 입는 ‘곤룡포’에 용의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신령스런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위상은 쉽게 알 수 있다.


   우그웨이가 선발하고자 했던 용의 전사는 바로 이러한 용의 이미지를 가진다. 용의 전사는 전설 속의 용처럼 우주와 자연의 힘을 운용할 줄 알며, 그 힘을 이용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하는 것이다. 무적의 5인방, 그리고 시푸의 수제자였던 타이렁조차도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다 한들 용의 전사로 지목될 수 없었던 것은,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조건에 무예가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주와 자연의 힘은 어떻게 운용하는가? 영화에서는 ‘기(氣, Qi)’라는 것을 마스터하면 된다고 한다. ‘기’란 무엇인가? ‘기’란 쉽게 말해 이 세상의 모든 개체들을 관통하는 우주적 기운이다. ‘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편재하며 만물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이 되는 것은 바로 고대사상인 ‘기화우주론(氣化宇宙論)’이다. 이것은 곧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경지에서 탈피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면서, 인간과 만물이 ‘기’로써 모두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대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인 장자(莊子)는 이를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쿵푸팬더> 3편에서 시푸가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장면도 바로 이러한 사고에 기반한다. 시푸는 눈을 감고 한껏 집중하며 힘겹게 꽃을 피워내는데, 이는 바로 ‘기’를 운용한 결과다. 1편의 맨 처음 장면에서 우그웨이에 의해 발탁된 포가 3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기’를 운용하여 악당 카이를 무찌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래전, 팬더 마을에서 팬더들의 ‘기’를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우그웨이. 우그웨이는 ‘기’의 편재성(遍在性)과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기’를 잘 운용할 수 있는 용의 전사를 선발하는 데에 누구보다 신중했던 것이다.


꽃에 기를 불어넣는 시푸
시푸의 기에 의해 활짝 핀 꽃

 

  ‘기’에 대해서 논하자면 도가철학을 빼놓을 수 없다. ‘기’는 도가철학의 ‘도(道, Dao)’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도’란 곧 우주의 만물을 지배하는 근본법칙을 가리킨다. ‘기’는 만물을 관통하는 기운이고 ‘도’는 만물에 공통된 우주의 근본법칙이므로, 우주 만물은 ‘기’와 ‘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가의 시조 노자(老子)가 가장 최고의 경지로 생각했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어떤 인위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우주의 근본법칙인 ‘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의 법칙을 깨달았을 때에 ‘기’는 비로소 제대로 운용될 수 있다. 


   포의 ‘기’ 마스터 과정은 이러한 도가철학의 원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쿵푸팬더> 3편에서 포가 ‘기’를 마스터하기 위한 여정에 올라 산골짜기 팬더마을에 입성한 후, 다른 팬더들처럼 만두 여러 개를 한꺼번에 입에 쑤셔 넣는다든가, 언덕에서 데굴데굴 구른다든가, 늦잠을 늘어지게 잔다든가 하는 것들은 바로 자신의 팬더로서의 본성을 되찾는 것이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법칙인 ‘도’에 몸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포의 ‘기’는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팬더의 본성을 되찾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마스터되었던 것이다. 


젓가락으로 만두를 하나씩 집어먹는 포를 보고 놀란 아기팬더
모두가 언덕을 굴러 내려가자 놀라는 포에게 설명하는 리
팬더마을에서의 첫 훈련을 기대하며 일찍 일어난 포에게 다시 잘 것을 명령하는 리


   포를 ‘용의 전사’로 지목한 우그웨이는 중국어로 ‘거북’이라는 뜻을 가진다. 거북은 <예기>에서도 신령스런 네 종류의 동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을 뿐 아니라, 옛날부터 장생(長生)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기 때문에 양생(養生)과 불사(不死)를 중시하는 도교에서 특히 신성시했다. 도교의 주요 근간이 되는 신선가에서는 거북의 호흡법을 모방한 ‘구식법(龜息法)’을 양생과 불사를 위해 익혀야 할 중요한 기술로 삼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기 책 <박물지(博物志)>에 의하면 구식법은 신선가들의 복식호흡법으로, ‘아침저녁으로 목을 빼고 동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도교의 주요한 상징적 존재인 우그웨이가 도교의 핵심 개념인 ‘기’의 운용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기’란 본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기’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순환하여야 비로소 ‘도’의 법칙에 합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악당 카이는 사부들의 ‘기’가 응축된 옥(玉)을 여러 개 꿰차고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순환성을 근본으로 하는 ‘기’가 응축된 채 카이의 손아귀에 있는 모습을 보고 우그웨이가 던졌던 말을 상기해보자. “언제 깨달으려는가, 많이 얻을수록 많이 잃는다는 걸(When will you realize, the more you take, the less you have)?” 


“When will you realize, the more you take, the less you have?”

 

  ‘기’의 순환과 이로 인한 변화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도’인 까닭에,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카이는 결국 그 ‘기’를 감당치 못해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필연적 결과를 ‘도’의 법칙에 통달한 우그웨이는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우그웨이에 의해 얼떨결에 ‘용의 전사’로 지목된 포. 과연 그가 용의 전사는커녕 쿵푸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우그웨이만은 확신 속에서 그를 받아들였고, 그 이유를 우리는 3편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도’ 안에서 ‘기’를 운용할 줄 알게 된 후 진정한 ‘용의 전사’로 거듭난 포.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용이 된 포는 비를 다스리는 용의 화신답게 악당 카이에게 천둥(thunder)의 맛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기(氣, Qi)를 마스터하는 자, 우주를 다스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